‘민중의 몽둥이’와 ‘고문·조작 공장’의 상징
내무부의 치안본부 직할체제가 낳은 흑역사
행안부에 ‘경찰국’ 설치 노리는 윤석열 정부
법 조문 아전인수, 무모하고 위험한 ‘역주행’
[논썰] 독재가 사랑한 백골단·대공분실… 윤석열 정부가 소환한 악몽. 한겨레TV
이번 <한겨레 논썰> 89화에서는 백골단과 대공분실에 대해 말씀드려보려고 합니다. 저 단어들을 들으면 귀에 선 분도 계시고, 회상에 잠기는 분도 계실 겁니다. 아마도 세대차가 핵심 변수일 텐데요. 그럼, 제가 왜 지금 백골단과 대공분실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하느냐…. 윤석열 정부가 행정안전부 안에 경찰국을 설치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로 경찰청장이 사의를 밝히는가 하면 일선 경찰관들도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경찰이 왜 반발하는지도 살펴봐야겠지만, 우리 국민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민하게 따져보고 경계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백골단과 대공분실. 1980년대와 90년대 청년기를 보낸 세대의 기억을 소환하는 이 역사적 유물에서, 윤석열 정부가 아무리 ‘경찰국’이라고 써도 ‘경찰 통제’ 또는 ‘경찰 장악’이라고 읽을 수밖에 없는 사정이 드러납니다. 나아가, 막강한 물리력을 가진 경찰이 누구에 의해, 어떤 시스템에 의해 작동되고 통제돼야 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게 해줍니다.
[논썰] 독재가 사랑한 백골단·대공분실… 윤석열 정부가 소환한 악몽. 한겨레TV
신분은 경찰, 하는 짓은 용역 깡패
허연 해골 무리! 백골단의 이름을 풀면 그렇습니다. 1980년대, 90년대 시위대나 파업농성 노동자들에게는 치 떨리는 대상이었습니다. 하는 짓은 용역 깡패나 조폭 같은데, 신분은 경찰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국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폭력집단이었습니다. 정식 명칭은 ‘사복 체포조’였는데요. 그렇다면 백골단이라는 이름은 왜 붙었느냐. 머리에 오토바이 안전모처럼 생긴 흰색 헬멧을 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난폭, 잔혹, 야만, 무자비한 폭력 같은 이미지도 함께 담겨 있었다고 봐야 할 겁니다. 백골단의 복장을 좀 더 살펴보죠. 반드시 흰색 헬멧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앞뒤로 흰색과 파란색으로 나눠 칠한 헬멧도 흔했고, 주황색, 진청색도 있었습니다. 단체로 스키 헬멧처럼 생긴 걸 쓰고 있는 자료사진도 남아 있습니다. 그래도 흰색 헬멧이 집단기억으로 남아 있는 건, 역시 그들한테서 허연 해골의 섬뜩함이 연상됐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논썰] 독재가 사랑한 백골단·대공분실… 윤석열 정부가 소환한 악몽. 한겨레TV
[논썰] 독재가 사랑한 백골단·대공분실… 윤석열 정부가 소환한 악몽. 한겨레TV
[논썰] 독재가 사랑한 백골단·대공분실… 윤석열 정부가 소환한 악몽. 한겨레TV
옷차림은 야전상의 모양의 청재킷과 청바지가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이 또한 색깔과 디자인이 각양각색이었습니다. 통일된 기준조차 없는 이런 특성이 말해주는 건 뭘까요. 정복 경찰과는 하는 일이나 조직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음성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기동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일반 전경과 비교해 복장이 가벼웠습니다. 대나무로 엮은 다리 보호대를 차고, 대체로 검은색 장갑을 꼈습니다. 최루탄이 난무하던 시절이라 방독면은 필수였지요. 방독면 가방은 크로스백처럼 사선으로 맸습니다. 그리고 몽둥이와 방패에다 ‘사과탄’이라고 부르던 투척용 최루탄도 들고 다녔습니다.
서울시장과 내무부 장관 명의로 공채
백골단은 언제부터 존재했을까요? 1985년 8월1일에 처음 뽑았다는 게 정설입니다. 그날 서울시장 명의로 ‘특별경비부서 요원’ 경찰 채용 시험이 치러졌는데요. 응시 자격은 태권도 유도 검도 합기도 등 무도 2단 이상의 유단자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1986년 1월28일 내무부 장관 명의로 시행한 경찰 채용 시험이었습니다. 무도 초단 이상 공인단증 소지자가 응시할 수 있었는데, 채용 공고에 ‘합격자는 소정의 교육 이수 후 3년간 강폭력 전담 형사요원으로 근무한다’고 돼 있었습니다. ‘특별경비부서 요원’이나 ‘강폭력 전담 형사요원’이라고 뽑아놓고 사복 체포조 일을 시킨 겁니다. 속아서 들어왔다고 불평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한편, 신입 공채 말고도 여러 입직 경로와 소속 등이 있었습니다.
[논썰] 독재가 사랑한 백골단·대공분실… 윤석열 정부가 소환한 악몽. 한겨레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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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전경이나 의경 제대자입니다. 의무복무를 마친 다음에 순경으로 채용한 경우입니다. 둘째, 아직 제대하지 않은 전투경찰 가운데 체격이나 탁월한 신체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구성한 경우입니다. 셋째, 일선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경찰관 가운데 무술실력을 갖춘 사람들로 구성한 ‘특기중대’입니다. 시위가 급박할 때만 현장에 동원됐습니다. 넷째, 일반 전경 기동중대에서 일하는 전경인데, 시위 상황에 따라 사복체포조 복장과 전투경찰 진압복 복장을 바꿔 입는 경우입니다. 규모도 대단했습니다. 전국적으로 구성돼 있었는데, 서울시경에만도 1850명이 넘었습니다. 1989년 2월 <한겨레> 기획보도를 보면, 당시 서울시경은 무술경관 공채 출신 7개 중대 800여명, 전·의경 제대자 250여명, 전투경찰 선발자 600여명, 특기중대 200여명 등이었습니다. 그나마 1050여명을 헤아리던 무술경관 출신 가운데 2개 중대 250여명을 1988년 말 일선 경찰서에 배치해서 줄어든 규모가 그 정도였습니다. 그렇다면 백골단은 언제 사라졌을까요? 1991년 4월26일 명지대생 강경대 열사가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무자비하게 구타를 당하고 숨지자 범국민대책위가 5월4일 ‘백골단 해체의 날’을 선포하고 거리시위를 벌인 적도 있었는데요. 공식적인 해체나 해단은 끝내 없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와 시위 양상이 변하고, 경찰의 진압 방식이 바뀌는 과정에서 규모가 줄어들다가 일반 기동대 안으로 스며 흩어졌습니다.
[논썰] 독재가 사랑한 백골단·대공분실… 윤석열 정부가 소환한 악몽. 한겨레TV
길고 긴 죽음의 그림자
백골단은 시위 현장에서 주동자급을 체포하는 게 주요 임무였습니다. 미리 대상자를 점 찍어 뒀다가 쏜살같이 시위대 옆으로 치고 들어가 체포하는 식이었습니다. 체포 과정에서 몽둥이질은 말할 것도 없고, 날아차기, 머리채 잡기, 넘어뜨려 짓밟기 같은 살벌한 퍼포먼스를 선보였습니다.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과 함께 동공이 열릴 때까지 무차별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기본값이었죠. 집 안으로 문을 부수고 들어가거나 영업장 안을 발칵 뒤집어서 학생을 잡아가는 일도 비일비재했습니다. 백골단은 거리 시위 현장뿐 아니라 파업 현장 같은 데도 수시로 투입됐고, 압수수색에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1989년 7월12일, 안기부가 <한겨레>의 방북 취재 계획을 빌미로 리영희 논설고문을 구속한 뒤 한겨레신문사 본사를 강제 압수수색할 때 백골단을 대동했습니다. 1990년 KBS 파업 때도 백골단이 여의도 본사로 들어가 노조원들을 폭행하고 100명 넘게 연행하기도 했습니다.
[논썰] 독재가 사랑한 백골단·대공분실… 윤석열 정부가 소환한 악몽. 한겨레TV
백골단에게 시위 군중이나 파업 노동자는 시민이 아니었습니다. 범죄자를 넘어, 적으로 간주했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따라다닌 건 필연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 강경대 열사 타살이 대표적입니다. 그해 5월 성균관대생 김귀정 열사도 시위 도중 백골단의 폭력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1996년 3월에는 연세대생 노수석 열사가 백골단의 ‘토끼몰이’ 진압 과정에서 희생됐습니다. 심지어 죽은 자를 두번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1991년 5월7일 백골단은 의문사한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 열사의 빈소로 쳐들어가 영안실 벽을 깨부수고 주검을 탈취했습니다. 그리고 당국은 박 열사를 일방적으로 부검해버렸습니다. 백골단은 한마디로 독재정권이 ‘민중의 지팡이’여야 할 경찰을 자기 손에 틀어쥐고 마음껏 휘두른 ‘민중의 방망이’였습니다.
[논썰] 독재가 사랑한 백골단·대공분실… 윤석열 정부가 소환한 악몽. 한겨레TV
고문·조작 공장, 대공분실
백골단이 백주대낮의 폭력집단이었다면 대공분실은 어둠 속의 폭력집단이었습니다. 백골단이 몽둥이질과 주먹질·발길질이었다면 대공분실은 온갖 기묘하고 잔혹한 고문이었습니다. 경찰청이 외청으로 독립하기 전 내무부 치안본부 산하에 있었습니다. 대공분실 하면 1987년 1월14일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부터 떠오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비로소 세상에 존재가 알려졌습니다.
[논썰] 독재가 사랑한 백골단·대공분실… 윤석열 정부가 소환한 악몽. 한겨레TV
이 참극이 벌어진 ‘남영동 대공분실’은 그뒤 2005년 7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경찰청 인권센터로 운영되다, 지금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건물을 운영하고 있으며, 내년에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정식 개관할 예정입니다. 1976년 당시 김치열 내무부 장관이 발주해서 지어졌습니다. 이 건물은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걸로도 유명합니다. 고문의 심리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목적에 맞춰 외관부터 내부 구조까지 온갖 건축적 요소를 치밀하게 설계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죠.
[논썰] 독재가 사랑한 백골단·대공분실… 윤석열 정부가 소환한 악몽. 한겨레TV
대공분실은 이곳뿐만 아니라 전국에 산재했습니다. 2012년 2월 백재현 민주통합당 의원 요청으로 경찰청이 공개한 대공분실은 전국에 20여곳이 있었습니다. 대공분실에 한번 끌려들어가면 멀쩡하게 나오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신체적, 정신적 고문 등 인권유린이 자행됐습니다. 민주화운동가들부터 납북어부들까지 수많은 인사들이 고문을 받은 끝에 거짓 자백을 하고 ‘빨갱이’로 내몰려 감옥으로 가야 했습니다. 1985년, 23일 동안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 기술자 이근안으로부터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받았던 김근태 민청련 의장은 훗날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남영동 5층 구석방에서의 23일, 이것은 지옥이었다. 독가스 대신 전기고문과 물고문이 설치는 나치 수용소였다. 시간이 종국적으로 멈춰 버린 영원한 저주의 세계였다.” 국회의원을 지낸 김 의장은 2011년 12월 타계할 때까지 고문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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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인권센터에 따르면, 대공분실의 뿌리는 1948년 10월 대간첩 수사 업무를 위해 발족한 치안국 특수정보과 중앙분실입니다. 그 뒤 1970년 10월 정보과 공작분실로, 1976년 5월 치안본부 대공과 대공분실로 바뀌었고,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인 1983년 12월 좌경의식 수사 업무를 흡수하고 제4부 대공 수사단으로 통합되었습니다.
경찰의 물리적 폭력으로 버틴 전두환 정권
전두환 치하의 대공분실, 더 나아가 대공분실을 관장하던 대공수사처의 위세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영화 <1987>에도 나오는 박처원 처장이 우두머리였는데요. 제가 당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2차 수사를 담당했던 전직 검사를 인터뷰하면서 들은 얘기는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1987>에 나오는 당시 최환 서울지검 공안2부장의 지시로 서울 시내 한 호텔 객실에서 열린 ‘관계기관대책회의’에 따라갔다가 박처원 처장을 처음 보고는 속으로 ‘아, 저분이구나’ 하고 감탄했다는 겁니다. 경찰 수사를 지휘하는 검사가 경찰 소속인 박 처장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의아해 물었더니, 그 시절에 경찰은 검찰보다 힘이 셌다고 하더군요. 전두환 정권이 경찰의 물리적 폭력에 기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거였습니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경위서를 버젓이 낼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최환 부장검사도 훗날 퇴임 뒤 “그 경위서는 누가 보더라도 고문사였다”고 여러차례 말했고, 김용갑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2007년 언론 인터뷰에서, 경찰의 보고 내용에 대해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다들 ‘못 믿겠다’ ‘어처구니없이 우긴다’는 반응이었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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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박종철 고문치사로 실형을 살았던 한 남영동 대공분실 출신 경찰관은 사건 30주년이 되던 2017년 1월 <한겨레>에 이렇게 말합니다. “1986년에는 대공사건에서 의문사가 생겨도 이슈화된 적이 없다. 그땐 우리만 문제가 돼서 불만도 없지 않았다.” 그 시절에 은폐된 고문치사 사건이 더 있었음을 시사하는 저 발언은 충격적입니다. 전두환이 틀어쥔 치안본부 대공분실은 온 국민을 공포에 떨게 하는 ‘고문·조작의 공장’이었습니다.
경찰청 독립은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지금까지 말씀 드린 백골단과 대공분실 이야기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체가 어딘지 눈에 띄십니까? 내무부입니다. 지금의 행정안전부죠. 경찰 조직의 정점은 치안본부였고, 치안본부는 내무부 장관의 직접 지휘를 받았습니다. 최고 권력을 쥔 독재자는 그런 구도 속에서 거대한 경찰 조직을 사조직처럼 거머쥐고 ‘민중의 몽둥이’와 ‘고문·조작 공장’으로 써먹은 겁니다. 지금의 경찰청은 이렇듯 어둡고 아픈 역사에 대한 반성과 대안으로 경찰 조직을 1991년 내무부 직할 본부에서 외청으로 분리시켜 나온 결과입니다. 경찰청 독립은 한마디로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었던 겁니다. 구성원이 14만명이나 되는 경찰은 군을 제외하면 국가의 가장 큰 물리력 단위입니다. 군이 자국민에게 총을 쏘고 대검을 휘둘렀던 5·18 같은 암흑의 역사가 있지만, 군의 물리력은 기본적으로 외부의 적을 향합니다. 전시가 아닌 한 국민에게 직접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조직은 경찰 말고 없습니다. 그 물리력이 국민을 보호하는 데 쓰이느냐, 국민을 탄압하는 데 쓰이느냐는 무엇보다 정치권력에 대해 제도적으로 얼마나 튼튼하고 높은 방화벽을 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최고권력자의 선의는 그 다음 문제입니다. 경찰 조직이 최고권력자에게 제도적으로 예속된다면 물리력이 악용될 가능성도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내무부 장관 명의로 백골단을 뽑고, 대공분실 공사를 발주한 것은 상징적입니다.
윤석열 정부의 속 보이는 속도전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경찰청을 다시 행안부 장관 휘하에 두려고 광속의 속도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의 고등학교·대학교 후배인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직접 ‘경찰제도 개선 자문위원회’를 꾸리고, 행안부 차관을 공동위원장으로 앉힌 다음, 불과 네번의 회의 만에 ‘권고안’을 발표하더니, 8월 말에 행안부 안에 경찰국을 출범시키겠다고 전격적으로 발표했는데요. 민주화 과정에서 어렵사리 진전시킨 경찰청 독립에 대한 몰역사적인 인식도 문제지만, 논리비약은 더욱 심각합니다. 이유를 대는 게 하나하나 가관입니다. 첫째, 행안부 장관이 직접 지휘·감독하지 않으면 경찰은 아무런 지휘나 견제 기관 없이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에 이어서 제4의 경찰부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건데요.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한 법률’(경찰법)에 따라 경찰 감독기구로 국가경찰위원회를 두고 있는 건 뭐란 말입니까. 둘째, 윤석열 정부의 원칙은 헌법과 법률에 합치되게 내각을 운영하는 것이라면서, 행안부가 경찰청을 직접 통제하는 것이 거기에 해당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지난 30년 동안 경찰청의 독립을 보장해온 것이 헌법과 법률에 어긋난다는 뜻인가요.
법 조문 아전인수하는 판사 출신 장관
이상민 장관은 지난 27일 브리핑에서 ‘치안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행정안전부 장관 소속으로 경찰청을 둔다’는 정부조직법을 근거로 “행안부 장관이 정부조직법상 치안 사무를 관장한다”고 주장했는데요. “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여기서 이 사무 관장의 주체가 누구인가는 바로 명백하게 나타난다고 할 것이다”라고까지 말했습니다. 그러나 1990년말 개정된 정부조직법 조문에는 “치안 및 해양경찰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게 하기 위하여’ 내무부 장관 소속하에 경찰청을 둔다”고 명시돼 있었습니다. 치안 사무 관장의 주체를 경찰청으로 못 박은 거죠. 또한 당시 정부조직법 개정 이유는 “민생치안역량 강화와 경찰행정의 중립성 보장을 위하여 치안본부를 경찰청으로 개편함”이라고 돼 있습니다. 다만 1998년 표현이 어색한 법조문을 재정비하기 위해 정부조직법을 개정했는데요. 이때, 여러 외청 관련 조항에 들어 있는 ‘하게 하기 위하여’를 ‘하기 위하여’로 일괄적으로 바꿨습니다. 이 장관은 이런 역사적 맥락과 사실관계를 지운 채 ‘행안부가 치안 사무를 관장한다’고 자의적으로 해석한 겁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판사 출신 장관이 말입니다.
[논썰] 독재가 사랑한 백골단·대공분실… 윤석열 정부가 소환한 악몽. 한겨레TV
행안부는 ‘소속청에 대하여는 중요정책수립에 관하여 그 청의 장을 직접 지휘할 수 있다’는 정부조직법을 근거로 “행안부 장관이 경찰청장을 직접 지휘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행정법 전문가이자 전 국가경찰위원장인 박정훈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겨레>에 “정부조직법엔 ‘장관의 소관사무로서 통할권이 있는 소속청일 경우’라는 단서가 있다”며 “행안부 장관이 치안 사무를 소관하지 않는 현 상황에서 해당 규정을 근거로 경찰청장을 지휘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논썰] 독재가 사랑한 백골단·대공분실… 윤석열 정부가 소환한 악몽. 한겨레TV
한마디로, 법 조문에 자꾸 상상력을 불어넣지 말고, 단서 조항 빠뜨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읽으라는 얘깁니다. 행안부 장관의 직접 통제가 정히 필요하다면 정부조직법을 개정하라, 이런 얘기기도 하죠. 박 교수는 대단히 보수적이고 권위를 중시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분이 하는 말이니, 윤석열 정부는 색안경 쓰지 말고 들어야 할 겁니다. 자꾸 억지 주장만 하니까 의도를 더욱 의심받는 거 아닙니까.
경찰에 필요한 건 ‘민주적 통제’ 강화
다만 경찰의 독립은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경찰청 독립 이후에도 용산 참사,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같은 경찰의 과도한 물리력 행사와 국정원 댓글 조작 같이 정권에 불리한 사건에 대한 왜곡 수사가 근절되지 않았습니다. 2015년 11월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민중총궐기대회가 끝난 다음, 당시 강신명 경찰청장이 대회 주최 쪽에 ‘소요죄’를 적용하겠다고 망발을 하기도 했죠. 여전히 정치권력의 눈치를 본 측면도 있고, 경찰이라는 거대한 물리적 조직이 스스로도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측면도 있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수준 높고 실질적인 민주적 통제가 이런 문제를 제어하기 위한 충분조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가경찰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해 경찰에 대한 통제력을 높이되, 위원 구성의 민주성과 다양성도 동시에 강화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경찰을 권력의 지배로부터 더 확실히 보호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윤석열 정부가 경찰 권한의 비대화를 진정으로 우려한다면, 괜한 짓 해서 의심을 사지 말고, 이 일부터 해야 할 것입니다. <한겨레 논썰>이었습니다. 기획·출연: 안영춘 논설위원 jona@hani.co.kr 연출·편집: 조소영 피디
28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앞에서 열린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양대노총 결의대회'에 참석한 양경수 민주노총위원장(앞줄 오른쪽부터 두 번째)와 김동명 한국노총위원장(앞줄 오른쪽부터 세 번째)이 조합원들과 함께 최저임금 인상을 촉구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스1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2일 서울 도심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도심 행진에 나선다. 경찰은 불법행위 발생시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2일 오후 2시 서울광장 일대에서 '7·2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오후 1시께부터는 공공운수노조, 건설노조, 전국택배연대노조 등이 을지로 일대에서 사전집회를 연다. 오후 2시께부터 4시 30분께까지 세종대로 일대에서 4만5천여명이 모여 집회를 한다.
집회를 마친 뒤 ▲ 숭례문~서울역~삼각지 ▲ 대한문~서울역~삼각지 ▲ 서울광장~서울역~삼각지 등으로 나눠 3개 차로(버스 전용차선 제외)를 사용해 약 3만명이 행진한다.
민주노총은 임금·노동시간 후퇴 중단, 비정규직 철폐, 차별 없는 노동권 쟁취 등을 요구한다.
경찰은 집회에서 불법행위가 발생하면 엄정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또한 집회 및 행진 구간 주변에 안내 입간판을 설치하고 경찰 500여명을 투입할 예정이다.
경찰은 이날 전국노동자대회로 교통혼잡이 예상되는 만큼 정체 구간을 우회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줄 것을 당부했다.
관중에 머물지 않고 직접 뛰겠다는 선언 “상쾌하고 성취감 있어”
남학생 비해 체육 참여도 낮은 현실…교사들 “경험 부족한 탓”
‘공차소서’ 등 여학생 운동클럽 인기…운동장서 성역할도 파괴
[한겨레S] 커버스토리여학생에게 운동장을!
지난 18일 서울시교육청이 운영하는 여학생 야구클럽 ‘공치소서’ 학생들이 서울 덕수고등학교 실내야구장에서 연습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올해 1월2일, 오스트레일리아(호주)에서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프로야구팀 멜버른 에이시스가 투수 제너비브 비컴과 계약을 발표한 것. 새삼스러울 것 없는 구단과 선수의 계약이 화제가 된 건 비컴이 여성이기 때문이었다. 여성 선수가 프로야구에 등장한 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비컴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누군가가 (여자이기 때문에) 소프트볼을 하라고 말해도, 원치 않는다면 절대 듣지 말라”며 “열심히 한다면 불가능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여성의 도전에 한계를 긋는 사회 분위기를 지적한 발언이었다. 학교 현장에서도 “여학생은 체육을 싫어해”라는 고정관념에 균열을 내는 이들이 있다. 운동장 한편에서 피구만 하지도, 스포츠 현장에서 자신의 역할을 경기를 바라보는 ‘관중’으로 제한하지도 않겠다는 이들이다.
공차소서, 공치소서, 마음껏 하소서
“띠잉~” 타격 연습용 고정대에 올려져 있던 연식 야구공이 배트에 빗맞아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공은 위로 뜨지 않고 바닥에 내리꽂혔다. 뒤에서 친구들이 “괜찮아” “한번 더”라고 독려했다. 홍소율(덕수고 1)이 다리를 어깨너비보다 좀 더 벌린 뒤 무게중심을 약간 뒤쪽으로 낮추고 다시 타격 자세를 고쳐 잡았다. 이윽고 상체를 비틀며 다시 스윙. “땅!” 배트에 제대로 맞은 공이 경쾌한 소리를 내자, 고정대에 야구공을 놔주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덩달아 높아졌다. “잘했어!” 마치 홈런이라도 친 듯 소율이 오른손을 이마에 모로 세우곤 멀리 보는 자세를 취했다. 타격 연습 차례를 기다리던 학생들이 “뭐야” 하며 웃었다. 토요일이던 지난 18일 오전, 김재걸, 류제국, 이용규 등 걸출한 스타 선수를 배출한 야구 명문 서울 덕수고의 실내 야구장을 채운 건, 남학생이 아닌 여학생 20여명이었다. 한번도 배워본 적 없는 낯선 야구를 접하려 인근 중·고교 4곳 학생들이 모였다. “공을 던질 땐 미는 게 아니라 손목 스냅을 탁 (뿌리듯) 하는 느낌으로 던져야 돼요. 체중(무게중심)은 뒤에 있다가 (던지면서) 앞으로 넘어가야 하고요.” 프로야구 선수 출신인 김현율 덕수고 체육교사가 투구 폼을 설명하며 맞은편으로 공을 던졌다. ‘퍽’ 하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공이 글러브에 꽂히는 모습을 지켜보던 학생 몇명이 김 교사가 취한 포즈를 따라 했다. 김예원(덕수고 1)이 “야구공이 글러브에 쏙 들어올 때 느낌이 너무 좋다”고 하자, 옆에 있던 소율은 “초등학교 때 발야구는 해봤지만 야구는 처음 해본다. 학교에서 배워볼 기회가 없었다. 배트에 공이 ‘땅’ 맞았을 때 쾌감은 말도 못한다. 실수해도 친구들이 이해하고 웃어주니까 부담이 적다”고 거들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김홍갑 덕수고 물리교사는 “교사 생활 37년차인데, 예전엔 여학생들이 이런 거(야구) 안 하는 사회 분위기였다. 요즘 여학생들은 스포츠 활동 참여에 적극적이다. 못하는 게 없다”고 말했다. 소율과 친구들이 야구 배트를 들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준 건 서울시교육청이다. 여학생 체육 활성화를 위해 시교육청은 올해 ‘공치소서’(공을 치자! 소녀들아! 서울에서!)라는 여학생 야구클럽과 ‘공차소서’(공을 차자! 소녀들아! 서울에서!)라는 여학생 축구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서울시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여중고생 56명, 184명이 각각 참여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시작한 ‘공차소서’의 반응이 좋아 올해는 공차소서 인원을 두배로 늘리고, 야구로 종목을 확대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축구와 야구는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이면서도 주로 남성들이 하는 스포츠로 인식돼왔다. 특히 야구는 이른바 4대 구기종목(축구, 야구, 배구, 농구) 중 유일하게 여성 프로 리그가 없다. 서울시교육청은 내년엔 ‘공차소서’를 초등학교 5~6학년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공차소서와 공치소서는 올 연말까지 토요일마다 진행한다.
서울 고척동 경인고등학교 학생들이 23일 오후 점심시간을 활용해 농구연습을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1시간 일찍 등교, 못 말리는 농구 사랑
경인고 2학년 이가은·최하은은 체육교사도 못 말리는 농구 연습벌레다. 이들에게 매주 목요일 점심마다 진행되는 농구 연습 시간은 “너무 적다”. 그래서 최근 자진해서 매일 아침 7시에 등교해 1시간씩 슛과 드리블 등을 연습한다. 얼마 전 하은은 이른 아침 가은과 레이업슛을 쏘는 연습을 하다 오른쪽 발목이 꺾여 인대가 파열됐다. 그래도 괜찮다. “운동하다 보면 다칠 수 있다”고 하은이 말했다. 이 학교 농구클럽엔 ‘남학생은 선수, 여학생은 매니저’ 같은 고정 성역할이 없다. 사실상 농구클럽 매니저 역할을 하는 홍경표(2학년)는 여학생들이 연습을 시작하기 전 점수판을 설치하고 경기 진행 시 점수를 기록한다. 목요일마다 진행되는 여학생 농구 연습에서 남학생들은 관중이다. 심판의 실수로 경기 흐름이 끊어지면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재 뿌리지 말라”며 심판에게 항의하는 모습도 체육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경표는 “체격 차이는 있지만, 스포츠에 진심인 태도는 성별의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가은과 하은은 올해 1학기 체육 수업에서 농구공을 처음 잡았다가 학교스포츠클럽 활동까지 하게 된 경우다. 가은은 “코트에서 뛰면 상쾌하고, 성취감도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하면서, 체육다운 체육을 하지 못했는데 좋다”고 말했다. 이들을 가르치는 이윤희 교사가 “6월 초 여의도여고한테 30 대 13으로 지더니 애들이 더 열심히 한다”고 눙쳤다. 학교스포츠클럽이란, 운동부 선수를 제외한 초등학교 2학년~고등학교 3학년 재학생 중 체육활동에 취미를 가진 동일 학교의 학생으로 구성되며 주로 수업 전, 방과후, 점심시간에 운영된다. 학교체육진흥법에 따라 전국의 초·중·고교는 학교스포츠클럽을 의무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특히 2011년부터 중학교에서는 1~3학년 정규 교과 과정에서 매 학기 34~68시간(총 136시간) 이상 ‘학교스포츠클럽 활동’을 편성하도록 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가은과 하은처럼 학교스포츠클럽에 참여하는 전국 초·중·고 여학생 비율은 2018년 46.6%(203만명)에서 2019년 49.5%(176만명)로 절반 가까이까지 올랐다가 코로나19를 겪으며 2021년 48.1%(122만명)로 조금 줄었다.
서울시교육청에서 운영하는 공차소서 프로그램에 지원한 송파 강동지역 여학생들이 18일 오전 서울 송파구 방이중학교 운동장에서 축구연습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가장 윗줄은 이들을 가르치는 조윤서, 장혜수 교사(왼쪽부터).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체육, 회복 탄력성을 배우는 시간
“체육 수업은 팀 경기를 하며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는 걸 배우는 시간이에요. 또 졌을 땐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컨트롤해야 하는지, 넘어졌을 땐 어떻게 일어나야 하는지 회복 탄력성을 배워요. 그동안 여학생들은 학교라는 안전한 실패의 장에서 이를 배울 기회가 적었던 거죠.”(홍유진 당곡중 교사) ‘여학생 체육 활성화’는 학교체육 활성화를 추진하는 교육당국의 오랜 숙제였다. 오죽하면 ‘여학생만 체육활동에 참여시켜도 학교체육 활성화는 성공’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특히 1990년대 후반부터 혼성학급이 권장되면서, 체격이 좋고 운동에 익숙한 남학생과 상대적으로 체격이 작고 스포츠가 낯선 여학생을 함께 가르쳐야 하는 체육교사들의 고민은 컸다. 주로 체육 수업 시간에 배우는 내용들이 남성 중심인데다, 스포츠 경험이 적은 여학생을 위한 체육활동 프로그램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스포츠를 경험하지 못했던 여학생들이 체육시간에도 소외될 수밖에 없는 악순환 구조였다. 2000년대 중반 성평등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며, 여학생 체육활동 활성화는 ‘학교체육 주요 업무 계획’의 주요 정책 과제로 제시됐다. 2016년 교육부는 학교체육 활성화 추진계획을 발표하며 여학생이 선호하는 종목 중심의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매주 특정 요일을 여학생 체육활동의 날로 운영할 것을 권장하기도 했다.(‘여학생 체육활동 활성화를 위한 학교체육 정책 분석’, 진연경·이현석, 2016년) 스포츠에 적극적인 여학생이 늘어난 이유로 학교 현장에선 ‘땀 흘리는 여성’에 대한 달라진 사회 인식과 더불어 학교스포츠클럽 활성화와 뉴스포츠 등장을 우선으로 꼽는다. 학교스포츠클럽 활동이 운동을 좋아하는 여학생들의 체육 수업 밖 ‘숨구멍’이었다면, 체육 수업 안에선 2010년대부터 수업 시간에 반영된 뉴스포츠가 여학생이 스포츠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한 유인 요소라는 설명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으로 건강·표현·도전·경쟁·안전 등 다섯가지 체육교과 목표에 스포츠 종목을 대입하는 방식으로 바뀐 것도 체력과 체격이 우선시됐던 전통 스포츠 위주 체육 수업이 바뀐 계기다. 예를 들어 표현 영역에선 체조나 무용을, 경쟁 영역에선 농구 등을 배우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전통 스포츠의 규칙과 기자재를 간략하게 변형한 뉴스포츠가 반영됐다. 농구와 비슷하지만 몸싸움이 없는 네트볼, 야구를 변형해 투수가 없는 티볼, 핸드볼과 닮았지만 상대 팀과 코트 구분이 없는 추크볼 등이 그것이다. 자신을 ‘뉴스포츠 1세대’라고 소개한 손영지 대전 신계중 교사는 “뉴스포츠를 하면, 여학생 분위기가 달라진다. 남학생과 신체 접촉이 없다 보니까 긴장도가 내려가고, 남학생 여학생 모두 처음 경험해보는 종목이기에 호기심을 가진다. 뉴스포츠를 경험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 체육교사가 되면서 여학생들에게 스포츠를 전달하기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이윤희 교사도 “성장 시기에 맞춰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는 뉴스포츠로 체육활동의 경험을 쌓고, 이후부턴 (난도가 높은) 전통 스포츠를 배우는 게 좋다”고 말했다.
‘공치소서’에서 여학생들이 지급받은 야구화를 신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싫어하는 게 아니라 낯선 것
신체활동의 재미를 느끼고 적극적으로 체육활동에 참여하는 여학생이 늘고 있지만, 체육교사들은 “여학생의 체육 참여도가 아직 남학생에 비해 낮은 게 사실”이라고 지적한다. 실제 중1~고3을 대상으로 한 질병관리청의 ‘2021 청소년건강행태조사’ 결과를 보면, 하루 60분씩 주 5일 이상 신체활동을 한 여학생은 8.1%로, 남학생 20.7%보다 훨씬 적다. 임용 2년차인 한 중학교 체육교사는 “여학생 참여도가 낮아 가르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친구들이 체육에 참여하지 않으면, 벤치에 앉아 있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대다수의 교사들은 여학생의 체육 참여도가 낮은 이유에 대해 ‘체육을 싫어해서’라기보다 ‘경험이 적어 낯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소영 서울대동초등학교 교사는 “남학생들은 어렸을 때부터 축구 등 운동을 많이 접하지만, 여학생들은 미술, 음악, 피아노처럼 신체활동이 적은 사교육을 받거나 운동을 하더라도 발레나 무용처럼 여성성이 강조되는 종목을 배워온 경향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유년기에 길러진 ‘운동은 남성의 영역’이라는 왜곡된 인식이 스포츠 경험의 차이를 불러왔고, 결국 체육 참여도 차이를 낳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무엇보다 강제성을 띠는 체육 수업 시간에 여학생들이 다양한 스포츠 경험을 쌓도록 교사와 학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황성룡 방이중 교사는 “체육교사가 체육 수업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여학생 참여도는 달라질 수 있다”며 “우리 학교도 4~5년 전까진 실내 체육 공간이 없어서 체육시간엔 주로 남학생 위주인 축구로 진행했는데, 최근 2~3년 동안 체육관, 무용실 등을 새로 지으면서 여학생뿐 아니라 체육에 관심이 적은 학생들이 다양한 종목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체육 수업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운영하는 스포츠 프로그램들의 학생 참여율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친구 소율과 예원의 등쌀에 못 이겨 올해 ‘공치소서’에 참여한 박윤진(덕수고 1)도 비슷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윤진은 “체육을 싫어한다기보다 잘 못해서 그동안 기피했는데, 막상 해보니 재미있어 계속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체육 경험이 낯선 여학생들을 지도하는 방법도 고민이 필요하다. 지난 6월 초 학교체육진흥회가 진행한 ‘2022 여학생 체육 활성화 실기 자율연수’에서 농구 강사로 나선 이윤희 교사는 “여학생 지도는 세심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못한다고 면박 주기보다는 잘할 수 있다고 독려하는 게 중요하다. 또 수업 시간에 기술만 알려주기보다 경기를 진행하면 참여도가 훨씬 높아진다. 교사가 어떻게 지도하느냐에 따라 학생의 인생 전반에서 신체활동에 대한 태도가 결정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에서 긍정적인 체육 경험을 한 학생이, 성인이 돼서도 운동과 가까운 삶을 살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실제 김빛나(24)씨는 고등학교 때 배운 농구를 성인이 돼서도 놓지 않은 경우다. 김씨는 “처음에 농구를 시작할 땐 아무것도 할 줄 몰랐다. 그런데 연습을 할수록 실력이 느는 걸 보면서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한 친구는 농구클럽에서 활동하다 자신이 운동을 좋아한다는 걸 깨닫고 체대에 갔다”고 말했다. 2017년부턴 ‘파시온 더블유(W)’라는 여자 농구 동호회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여학생들이 체육과 가까워질 수 없는 장벽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아직도 ‘아나공’(‘여기 있어’를 뜻하는 사투리 ‘아나’와 ‘공’의 합성어로, 학생들에게 공만 던져주고 수업을 방치하는 상황)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도 있다. 이민지(가명·중2)는 1학기 체육 수행평가를 다 마친 현재, 2주째 체육시간에 자율학습을 하고 있다. 교사의 방치 속에 남학생들은 축구를 하고, 여학생들은 앉아서 수다를 떤다. 민지는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논다. 1학년 때 배운 탁구나 다른 경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교사나 학교의 성별 편견도 여전하다. 반유담(잠신고 1)은 “중학교 때 학교에 남자 축구클럽은 있는데 여자 축구클럽은 없는” 이상한 경험을 했다. 유담은 “체육 선생님에게 축구 할 여학생들을 모아 올 테니 여학생 축구클럽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해 결국 개설했다”고 말했다.
학교스포츠클럽 농구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경인고 여학생들과 이윤희 교사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오늘도 운동장에서 고군분투
가뜩이나 운동장과의 접점이 적었던 여학생들에게 코로나19 발생 뒤 체육 교육의 필요성은 더 커졌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 11월 낸 신체활동 보고서를 보면 한국 청소년(11~17살) 94.2%가 세계보건기구가 권고하는 운동량을 채우지 못한다. 조사 대상 146개국 중 이 비율이 90%를 넘은 나라는 한국, 필리핀(93.4%), 캄보디아(91.6%), 수단(90.3%)뿐이다. 특히 운동량이 부족한 여학생 비율은 97.2%로, 146개 국가 중 한국이 가장 높았다. 코로나19를 겪은 현재 청소년 운동 부족은 이보다 더 심각할 것이라는 게 교사들의 생각이다. 체육 교육 현실은 여전히 처참하다. 현재 초등학교 1, 2학년은 별도의 체육시간이 없다. ‘즐거운생활’ 과목에서 음악, 미술과 함께 수업을 진행할 뿐이다. 초등 고학년과 중학교에서는 평균 주당 3시간씩 수업하지만, 고등학교는 10단위가 필수다. 10단위로 체육 수업을 꾸린 학교의 1개 학년은 한 학기에 체육시간이 주당 1시간뿐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2025년 고교학점제 시행으로 고교 전체 수업 단위가 현재 204단위(학점)에서 192단위(학점)로 줄어 특정 과목 수업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다. 체육교사들은 체육 과목이 희생양이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양적 팽창보다는 초·중·고 학교스포츠클럽, 방과후 활동 등을 통해서 질적으로 향상시키는 데 초점을 둘 때”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선 이런 교육부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보현 은광여고 교사는 “우리 학교는 1학년 2시간, 2학년 1시간, 3학년이 2시간 체육시간을 운영한다. 2학년 경우 시험, 수학여행 등으로 한달에 체육 수업을 한번 할 때도 있다. 지금도 땀 흘리면서 운동할 절대적 시간이 적은데 체육 수업 시간이 더 적어질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특히 코로나19를 겪은 뒤 김 교사의 걱정은 더 크다. “코로나19 2년 동안 학생들이 단체 생활을 안 해서인지 단체 수행평가를 하는 걸 힘들어한다. 심지어 자신이 그룹에 피해를 끼칠까 봐 수행평가 날 학교에 안 나오는 학생도 있다. 학생들이 여러명과 어울려 신체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체육밖에 없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스포츠를 해본 경험도, 스포츠를 해볼 시간도 부족한 학교에서 여학생들은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광주 서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검체 채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일 오후 9시까지 1만명이 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서울시 등 각 지방자치단체에 따르면 이날 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전국 17개 시도에서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신규 확진자는 1만202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날 동시간대 집계된 8984명보다 1218명 많은 수치다.
동시간대 중간 집계에서 신규 확진자가 1만명을 넘은 것은 지난달 8일 1만1411명 이후 23일 만이다.
일주일 전인 지난 24일 오후 9시 기준으로 집계된 6400명보다는 3802명 많고, 2주 전인 지난 17일의 6485명과 비교하면 3717명 많아 증가세가 뚜렷하다.
집계를 마감하는 자정까지 아직 시간이 남은 만큼 2일 0시를 기준으로 발표되는 신규 확진자는 이보다 늘어 1만명대 초반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지난주 후반부터 감소세가 주춤하더니 이번 주 들어서는 반등하는 모양새다.
지난달 30일 운영이 종료된 서울역광장 코로나19 임시선별진료소. /사진=연합뉴스
최근 일주일간 집계된 신규 확진자는 일별로 6787명→6239명→3423명→9894명→1만463명→9595명→9528명을 기록했고, 주간 하루 평균 확진자는 7천990명이다.
이날 오후 9시 기준 신규 확진자 중 6004명(58.9%)은 수도권에서, 4198명(41.1%)은 비수도권에서 확진 판정을 받았다.
지역별로는 서울 2778명, 경기 2715명, 경남 576명, 인천 511명, 경북 504명, 충남 385명, 강원 313명, 대구 311명, 울산 311명, 부산 298명, 대전 274명, 전북 274명, 충북 265명, 전남 243명, 제주 201명, 광주 164명, 세종 79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