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분리형 배달플랫폼’]
진입장벽 낮아 대부분 영세업체
배달기사 근무시간 등 지휘·감독
보험·계약서 안쓰는 등 무법지대
1일 낮 서울 마포구 용강동에서 한 배달노동자가 배달음식을 오토바이 상자에 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플랫폼 노동의 확산은 전 세계적 현상이다. 하지만 ‘케이(K)-플랫폼 노동’에만 도드라지는 특징이 있다. 플랫폼 기업이 플랫폼 노동자와 직접 계약을 맺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과 플랫폼 노동자 사이에 중간 업체가 끼어있는 구조다. 생각대로·바로고·부릉·공유다 등의 플랫폼 프로그램사와 배달기사(라이더) 사이에 지역배달대행업체가 끼어있는 ‘분리형 배달 플랫폼’ 구조가 대표적이다. 진입장벽이 없는 지역배달대행업체들은 규모가 영세하고, 정치·사회적 감시도 소홀해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권익 침해가 반복되는 상황이다. 분리형 배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플랫폼 업체들은 전국에 최소 60여곳으로 추산되고, 이 업체들과 계약 관계에 있는 지역배달대행업체는 많은 경우 한 업체당 1천여곳에 달한다. 지역배달대행업체는 창업의 진입장벽이 비교적 낮고 관청에 신고나 등록을 해야 하는 업종이 아니어서 업체의 규모가 영세하고 개폐업 또한 잦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가 배달기사들을 위해 내놓은 정책이 지역배달대행업체에선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한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10월 정부와 여당, 플랫폼 업체들이 협약을 통해 도입하기로 한 ‘배달대행 위수탁 표준계약서’다.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은 표준계약서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2021년 서울시 지역배달대행업체-배달라이더 간 거래관행 및 보험가입 실태조사 결과보고서’를 보면, 지역배달대행업체에서 일하는 라이더 1016명 가운데 표준계약서에 대해 ‘들어는 봤다’거나 ‘잘 모른다’고 답한 이들이 64.9%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표준계약서는 특정한 배달 강요·배달 정보 선별제공 금지나 계약해지 사유 제한 등의 내용을 담고 있지만, 지역배달대행업체에선 이런 내용이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표준계약서 인지 여부에 앞서, 서면계약서를 쓰지 않고 ‘구두계약’했다고 응답한 비율도 50.5%나 됐다. 지역배달대행업체 라이더 경력 10여년의 유상석 서울동남권노동자종합지원센터 팀장은 “라이더가 면허가 있는지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신원도 확인하지 않고, 계약서 한장 안 쓰고, 앱만 깔고 바로 배달을 나가는 경우도 숱하다”고 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 가입도 표준계약서에 적혀있다. 지역배달대행업체 라이더는 근무시간과 요일이 지정돼 있는 등 ‘전속성’이 높아 산재보험 가입 대상일 가능성이 크지만, 서울시 조사에서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이들은 57.1%로 절반을 넘겼다. 미가입자의 33.8%가 “산재보험을 잘 몰라서”, 17.9%는 “지역배달대행업체가 가입을 꺼려해서” 가입하지 않았다고 한다. 전속성이 있는 라이더라면 산재보험 가입이 ‘의무’인데도 지역배달대행업체가 그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정부도 지역배달대행업체를 적극적으로 관리감독하는 것이 아니라 ‘배달기사와 계약 관계가 없어 우리는 무관하다’는 취지로 주장하는 플랫폼 프로그램사만 바라보고 있다. 지난 18일부터 고용노동부가 산업안전보건법의 배달종사자 안전보건 의무 이행점검을 시작했는데, 그 점검을 지역배달대행업체가 아니라 프로그램사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정부는 지역배달대행업체가 몇 개인지 제대로 현황 파악도 못하고 있다. 조규준 한국노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지역배달대행업체는 진입장벽이 낮아 지역별로 우후죽순 생긴 경향이 있고, 계약서 서면작성이나 산재보험 가입과 같은 사업주의 책임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지역배달대행업체들이 통합형에 비해 취약한 면이 많아 이들에 대한 정책적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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