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정책 전망 ⑦ 의료
국립대병원·상급종합병원 분원
의료취약지역에 설치 공약
지방의료원은 이들 병원에 위탁
“돈 되는 곳만 골라 세울 우려
몸집 커져 민영화 가속화 할 것”
지난해 9월2일 서울 을지로에 있는 국립중앙의료원의 의료진이 코로나 음압격리병동에서 중증환자를 돌보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는 5월엔 코로나19 유행 상황이 안정되면서, 팬데믹 기간에 드러난 취약한 공공의료 시스템을 보완하라는 요구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는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공공의료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지만, 2020년 기준 전체 보건의료기관 7만3514곳 가운데 공공병원은 5.2%인 3801곳에 그칠 정도로 여전히 압도적인 민간병원 중심 의료 공급체계를 갖고 있다. 공공 병상 수(8.9%)와 의사(10.4%) 또한 민간의 10분의 1 수준이다. 2018년 기준 공공의료기관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평균 51.8%) 가운데 최하위다. 윤 대통령 당선자는 지역 간 의료격차를 줄이고 필수의료를 확대하는 등 의료 공공성 강화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공약집에서 △감염병 대응체계 강화 △필수의료 국가 책임제 △지역 응급·필수의료 및 의료인력 확보 등을 약속한 것이 대표적이다. 다만, 지방의료원이나 국립대병원보다는 민간병원을 활용해 공공성을 확대하는 데 무게가 실려 있다는 점에서, 공공병원을 신축하고자 했던 문재인 정부의 방안과는 해법이 다르다. 새 정부에서 민간병원의 몸집을 키워 ‘의료 민영화’를 가속화할 거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올해로 16년째 충북 괴산에서 사는 이애란(39)씨는 지난해 9월 집에서 차로 약 1시간 떨어진 충북 청주의 산부인과에서 둘째를 출산했다. 괴산에 분만 가능한 산부인과가 없는 탓이다. 이씨는 21일 <한겨레>에 “산부인과뿐 아니라 아이 뼈가 부러지거나 피부가 찢어졌을 때 믿고 갈 병원이 없어 막막하다”며 “지방에서도 기본적인 공공의료 서비스를 받도록 정책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산모·신생아·어린이 의료는 지역사회 건강 관리(만성질환·정신·장애인), 중증 의료(응급·외상·심뇌혈관), 감염병 관리 등과 더불어 대표적인 필수의료다. 2020년 국립중앙의료원의 ‘의료취약지 모니터링 연구 보고서’를 보면 분만취약지 최고 등급(A등급)을 받은 지역은 괴산 등 30곳으로 2019년보다 오히려 3곳 늘었다. 수익성이 낮은 필수의료 대부분을 제공하는 공공병원(국립중앙의료원·국립대병원·지방의료원 등)이 부족한 지역이 많다는 뜻이다. 윤 당선자는 국립대병원과 상급종합병원의 분원을 설치하고, 지방의료원 등 공공병원을 이들 병원에 위탁 운영하는 방식으로 지역의 필수의료 부족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약했다. 상급종합병원이 없는 시·도는 추가로 지정하겠다는 계획도 담겼다. 선거대책위원회에서 보건바이오의료분과 위원장을 맡은 박은철 연세대 의대 교수(예방의학과)는 “공공병원을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상급종합병원과 연계하거나 위탁 운영을 맡기는 방식으로 공공의료 강화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구체적인 방안으로 “위탁 운영에 참여할 상급종합병원을 지역 병원들과의 경쟁을 통해 뽑아 3년간 운영하도록 하고 선정된 병원에는 위탁 비용에 10%의 지원금을 더 주자”고 제언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공공성 강화’로 직결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을 맡은 조승연 인천의료원장은 “국립대병원도 수익을 올리지 못하면 병원이 존립하지 못해 사립대병원과 별 차이가 없다”며 “지방의료원을 국립대병원에 위탁 운영할 경우 수익성 중심으로 운영돼 공공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대표는 “45곳의 상급종합병원 중 33곳이 사립대병원인 상황에서 상급종합병원을 지원한다면 이들은 돈 되는 곳에만 분원을 세울 것이다. 대형병원의 지배가 가속화돼 지방 종합병원의 입지가 더욱 줄고 공공성은 악화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의료 공공성 강화를 국정과제로 선정해 2018년 ‘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대책’과 2021년 ‘제2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을 각각 발표한 바 있다. 대표 정책은 공공의료기관을 중심으로 권역·지역별 책임의료기관을 지정해 운영하는 것이다. 현재 권역 15곳, 지역 35곳 등 총 50곳 의료기관 지정을 마쳤고, 8곳은 올해 안에 지정을 마칠 예정이다. 2025년까지 지역 공공병원을 20곳 이상 신·증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가운데 지난해 1월 대전과 서부산 의료원, 경남 진주 공공병원의 건립을 위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받은 점은 성과로 꼽힌다. 정부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예타 면제를 받은 3곳뿐 아니라 울산과 광주 의료원도 국회에서 예산이 통과돼 사업 적정성 검토를 하는 등 공공의료 체계를 안정화시켜가는 과정이었다”며 “새 정부는 필수의료를 민간병원에 맡겨도 된다는 입장이라 현 정부의 공공의료 계획이 추진되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윤 당선자는 감염병 유행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공공정책 수가(의료서비스별 가격)를 새로 만들어 응급실과 중환자실, 음압병상을 평상시에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공약했다. 음압병실을 늘리고 감염병 환자를 일반 환자와 구분해 운영할 수 있도록 중환자실과 응급실을 개조하는 비용도 지원한다. 유행의 규모에 따라 해당 시설과 병상을 조절하지 않고, 미리 병상 등을 만들어놓고 평상시엔 일반 진료로 사용하다가 위기 상황에선 감염병 시설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해당 수가는 중증외상센터와 분만실, 신생아실, 노인성 질환 치료 시설 등 필수의료 시설을 확보하는 데도 적용할 방침이다. 박은철 교수는 “병원 입장에선 중환자 병실과 일반 병실 수가 사이에 책정된 수가가 없어 중환자가 아닌 환자를 중환자 병상에서 진료하면 수가가 삭감되는 부담이 있다”며 “위중증 환자 바로 밑에 있는 환자들을 보는 병상의 수가를 새로 만들어 병상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정부가 4조원가량의 손실보상금을 코로나19 환자 치료 의료기관에 지급한 상황에서 새로운 수가에 필요한 예산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구체적인 안은 보이지 않는다. 손실보상금은 손실이 확정되기 전에 손실액을 잠정적으로 계산해 일부를 미리 지급한다. 중앙사고수습본부 자료를 종합하면, 정부는 지난해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총 22차례 누적 4조121억원의 손실보상금을 지급했다. 우 대표는 “지난해 민간병원이 코로나 대응 한다고 약 3조원의 돈을 가져갔는데, 정작 코로나 환자의 70%는 공공병원이 봤다”며 “수가를 새로 만들어 지급하려면 엄청난 예산이 든다. 오히려 공공병원을 새로 짓거나 기존 공공병원을 지원하는 것이 훨씬 예산도 적게 들고 실현 가능하다”고 본다. 지난해 12월 국회예산정책처에서 낸 ‘지방의료원 비용추계 분석보고서’를 보면 지방의료원을 1곳 설립할 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2025년까지 총 2483억원으로 연평균 497억원으로 예상된다.
공공의대 설립과 의대 증원 등 의료인력 양성은 의료 공공성 강화를 위한 필수조건이지만, 윤 당선자의 공약집에선 이런 내용을 찾아보기 어렵다. 의료인력과 관련해 공약집엔 평상시보다 가산된 정책수가로 의사와 전문간호사와 같은 핵심 의료인력이 이탈하지 않도록 하거나 지역 국립대병원과 상급종합병원 공공성을 강화해 필수의료 인력을 확보·양성한다는 내용이 전부다. 박 교수는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대화를 재개하자는 의·정 합의를 마친 상황이기 때문에 윤석열 정부에서도 그 부분은 일정 부분 따라줘야 한다고 생각해 이 부분은 공약에 넣기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었던 것 같다”며 “2004∼2007년 의약분업 당시 의대 정원을 10% 줄인 적이 있는데 이 부분을 대학 규모와 수도권·지방 등에 따라 5∼20%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윤 당선자는 지난해 1월 간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간호사 업무환경 개선을 위해 정부뿐 아니라 국회가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원내지도부와 의원들에게 부탁할 것”이라며 간호법 제정에도 긍정적인 의지를 내비쳤다. 간호법 제정안은 의료법에서 간호사 업무 범위와 처우 규정을 떼어내는 법안으로 지난해 3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국민의당이 제정안을 발의했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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