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회 한국여성대회 개최
‘여가부 폐지’, ‘여성혐오 조장’ 정부 규탄 목소리 모여
올해의 여성운동상에 ‘파리바게뜨 지회’
특별상에는 고 임보라 목사
세계 여성의 날을 나흘 앞둔 4일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최하는 제 38회 한국여성대회가 서울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서울시청 앞 잔디밭이 페미니즘을 상징하는 보라색 물결로 뒤덮였다. 3·8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최하는 한국여성대회가 열리면서다. 4일 오후 올해로 38회를 맞은 한국여성대회(여성대회)가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주최 쪽 추산 1만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페미니스트 명절’로 불리는 한국여성대회는 코로나19 이후 온라인으로 열리거나 개최를 건너뛰었다. 지난해에는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온·오프라인으로 동시 개최됐다. 본행사가 열리기 전 광장에는 여성단체 등 60여개 단체가 참여하는 부스가 설치돼 시민들의 참여가 이어졌다. 부스에 참석한 단체들은 여성가족부 폐지 반대, 성별 임금격차 해소, 구조적 성차별과 성폭력 해소 등 다양한 성평등 의제를 내세웠다. 시민 유한나(24)씨는 ‘여가부폐지전국행동’이 마련한 부스에서 ‘여가부가 폐지되면 성차별이 심화되고 성평등 교육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내용으로 포스트잇을 붙였다. 이번이 다섯번째 여성대회 참석이라는 유씨는 “비동의강간죄법과 차별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보라색 옷을 입고 서울지역대학 인권연합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참석한 대학생 박민서(20)씨는 ‘전국여성연대’ 부스에서 윤석열 정부를 향해 ‘혐오 조장 정책을 멈추라’는 글을 적으며 “여가부 폐지 등의 이슈를 통해 정부가 성별 갈라치기를 조장하고 있는 것 같아 화가 난다”고 했다.
4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한국여성단체 연합 주최 ‘제38회 한국여성대회’에 마련된 부스에 ‘여가부 폐지’에 반대하는 글이 적힌 포스트잇이 모여있다. 이우연 기자
이날 공식 무대는 낮 2시30분 “성평등을 위해 전진하라”는 구호와 함께 시작했다. 여성이주노동자인 맹영심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활동가, ‘56년만의 미투’ 당사자인 최말자씨 등 5명은 ‘3·8 여성선언’을 발표하며 “윤석열 정부는 사회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발생하는 성차별 존재 자체를 지속적으로 부인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이는 페미니스트들의 오랜 투쟁으로 일궈온 국가 및 지자체 성평등 추진체계와 정책 전반의 후퇴로 이어지고 있다”며 “퇴행의 시대를 넘는 거센 연대의 파도가 되어 성평등 사회를 향해 힘차게 전진하자”고 했다. 올해의 여성운동상 수상자로는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파리바게뜨지회가 선정됐다. 지회는 지난해 임종린 지회장의 단식 등을 통해 청년 여성이 상당수인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들이 겪고 있는 노동인권 침해를 공론화했다. 나은경 지회 서울분회장은 “많은 단체의 도움으로 지난해 11월 사회적 합의에 이를 수 있었지만 회사는 지키지 않고 있다”며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공감과 연대로 계속 싸워나가겠다. 여성이 움직이기에 세상이 변화한다”고 말했다. 특별상에는 지난달 5일 별세한 고 임보라 목사가 선정됐다. 주최 쪽은 “차별과 혐오에 저항하는 이들과 연대하고 투쟁의 현장을 누비고 낙인찍힌 몸들의 고통과 아픔에 동참했다”며 “특히 교회 내 성폭력 사건 피해자를 지지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데 힘썼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2023 여성노동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여성차별의 상징인 유리천장을 깨고 나가자는 의미로 투명한 천을 찢는 상징의식을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성평등 디딤돌’에는 미군 기지촌 ‘위안부’ 문제에 대해 국가 책임을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을 끌어낸 미군 ‘위안부’ 국가손해배상 청구소송 112명의 원고와 대리인단 등이 선정됐다. 이밖에도 △특수고용노동자인 캐디의 노동권을 확장한 ‘전국여성노동조합 상록CC분회’ △군대 내 여성과 소수자 인권 향상을 끌어낸 ‘해군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변호인단’ △지방선거에 페미니스트 정치인을 출마시킨 ‘청주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걔네’가 이름을 올렸다. ‘성평등 걸림돌’에는 당 원내대표로서 여성가족부를 폐지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제출하고, 여성가족부의 버터나이프크루 사업(일상에서 성평등 의제를 찾아내는 청년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사업)을 중단시킨 권성동 의원과 구조적 성차별의 존재를 부정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선정됐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 ‘성소수자’, ‘성평등’, ‘재생산’ 표현을 삭제한 교육부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에도 유산유도제 의약품 허가를 지연한 식품의약품안전처 등도 꼽혔다. 또한 △여성직원에게 밥을 짓게 하는 등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용노동부의 처분을 받았음에도 피해자에게 사과 없는 동남원새마을금고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남성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피해자가 전화를 받지 않아 부재중 전화로 표시됐다면 스토킹 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인천지법 형사9단독 재판부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의 대책으로 여성노동자 당직근무 배제를 내세운 서울교통공사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을 은폐·축소한 포스코도 선정됐다. 이들을 호명하는 시간에는 참가자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서울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한 이태원 참사 유족들의 연대 발언도 있었다. 고 배우 이지한씨의 어머니 조미은씨는 “이태원 유가족들이 특별법을 통해 독립된 조사기구를 만들려고 하는 것에 전 세계에 계신 여성 분들이 같이 서달라”고 했다. 이어 ‘이소선 합창단’의 노래와 광화문 사거리와 종각역, 을지로입구역을 거쳐 서울광장으로 돌아오는 거리 행진을 끝으로 여성대회는 마무리됐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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