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파병을 준비하던 부대에서 강도 높은 훈련과 가혹행위에 시달린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군인의 유가족이 54년 만에 국가배상 판결을 받았다.
9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34단독 홍은기 판사는 숨진 A씨의 형제 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대한민국)가 원고들에게 1인당 19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A씨는 입대 후 석 달 만인 1969년 8월 훈련을 받던 중 몸이 불편하다며 지휘관 허락을 받고 부대에 복귀하다 실종됐다. 그는 실종 하루 만에 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 조사 결과 A씨는 베트남전 파병을 위한 훈련 부대에 배치된 지 5일 만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는 김신조 등 북한 공작원이 청와대를 습격한 이듬해로 전군에 대비 태세가 강화된 시기였다. A씨가 속한 부대에서는 일반 보병부대보다 강도 높은 훈련이 진행됐다. 위원회는 A씨가 군에 만연했던 구타와 가혹행위 등 병영 부조리, 신병에 대한 부대 관리 소홀 등으로 사망에 이르렀다고 지난해 3월 결론냈다. 이에 국방부도 같은 해 11월 A씨의 사망을 순직으로 인정했다.
정부는 A씨 유족이 낸 소송에서 “국가가 A씨 신병 관리를 소홀히 했다거나 보호 의무를 위반했다는 사정이 객관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국가가 A씨 사망을 예견하거나 피할 수 있었다고 보이지도 않는다”며 책임을 부인했다.
그러나 홍 판사는 “망인의 극단적 선택은 신병 관리를 소홀히 한 부대 관계자들의 관리·감독 소홀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며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지휘관들은 훈련 중 몸이 좋지 않다는 A씨에게 별다른 보호 조치를 하지 않고 총기를 소지한 채 복귀하도록 했고, 구타와 가혹행위가 행해지는 것을 알고도 예방 또는 시정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했다.
홍 판사는 A씨가 생존했다면 얻을 수 있던 소득을 5200여만원으로 봤다. 이 중 국가 책임은 50%로 인정했다. 또 정신적 피해에 따른 위자료를 A씨 2000만원, 별세한 어머니 1000만원, 원고 1인당 800만원으로 정해 상속분에 따라 원고들에게 배분했다.
베트남전 파병 준비 부대서 숨진 군인…54년 만에 '국가 배상' 판결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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