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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March 16, 2022

“기지촌 언니들 유일한 놀이터 '두레방' 마련해준 '우리의 엄마' 고맙습니다” - 한겨레

[가신이의 발자취]고 문혜림 선생님을 그리며
1986년 의정부시 가능동 첫번째 두레방 앞에서 고 문혜림(오른쪽) 선생과 함께한 유복님 원장. 필자 제공
1986년 의정부시 가능동 첫번째 두레방 앞에서 고 문혜림(오른쪽) 선생과 함께한 유복님 원장. 필자 제공
지나온 삶의 가장 빛나던 시절을 생각할 때면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습니다. 숙 *, 인 *, 정 *, 써니 , 지니 …, 알려지고 싶지 않은 이름을 가졌던 언니들 , 그리고 ‘우리의 두레방 엄마’ 문혜림 선생님. 지난 11일 멀리 미국에서 그렇게도 사랑하신 남편 문동환 목사님 곁으로 떠나신 ‘엄마’를 생각하며 빛나고 치열했던 그 나날들 안으로 다시 들어가 봅니다 . 그 시절 우리는 초라했지만 빛났고 , 치열했지만 기쁨과 여유를 잃진 않았습니다 . 한국기독교장로회 여신도회 특수선교센터 ‘두레방’은 몇달 동안의 준비기간을 거쳐 1986 년 봄 경기도 의정부시 가능동의 주한미군 2 사단 사령부 캠프 레드클라우즈 앞에서 첫 자리를 잡았습니다 . 기지촌 여성들을 위한 단체가 전무한 시절이어서 뭔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은 늘 두렵고 떨리는 일이었습니다. 조그만 부엌이 딸린 방 한칸의 600 만원 전세방을 우리는 참 살뜰하게도 활용했습니다 . 아침부터 저녁까지 문 선생님의 전문상담 사무소로 , 영어교실 , 한국어교실 , 요리교실 , 연극 , 책거리잔치 , 공동식사 등이 이어졌고, 여행 , 가정방문 , 기지촌 현장방문 , 성병진료소 방문 등등 쉴틈이 없었지요. 밤이 되면 그 방은 상근 활동가인 저의 숙소가 되었고, 혼자 있는 제가 심심할까봐 언니들은 자주 놀러왔습니다 . 우리는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습니다. 언니들의 첫 사회생활은 대부분 기지촌이 아닌 공장에서 , 어린 나이부터 시작되었습니다 . 가난 , 공교육 부족으로 인한 무시 , 저임금 , 성폭행 , 선불금 등의 여러 이유로 언니들은 밀리고 밀려 기지촌으로까지 온 것이었습니다 . 밤새 울며 웃으며 나눈 이야기를 이튿날 아침이면 문 선생님께 전달해 전문상담으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 우리는 서로 ‘언니 ’ 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문 선생님은 우리들 마음 속의 엄마로 자리잡았습니다 . 우리는 무조건 ‘ 언니들 편들기’를 했습니다. 오래 전 언니들의 자치모임인 ‘ 민들레회 ’가 있었다고는 들었지만, 고립된 섬같았던 기지촌에서 두레방은 언니들의 유일한 놀이터가 됐습니다 . 그래서 문 선생님과 저는 대학이나 교회 또는 외국의 강연 요청이 있을 때마다 언니들의 편에 확실히 서서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
1987년 봄 의정부에서 두번째로 문을 연 송산 두레방 앞에서 책거리 잔치를 마친 귀 함께한 고 문혜림(왼쪽) 선생님 유복임 원장. 필자 제공
1987년 봄 의정부에서 두번째로 문을 연 송산 두레방 앞에서 책거리 잔치를 마친 귀 함께한 고 문혜림(왼쪽) 선생님 유복임 원장. 필자 제공
두레방은 점차 성장해갔고 국내외 단체들의 시선과 기대도 모으며 찾아오는 이들도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 두레방을 넓히자는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문 선생님과 저는 하나를 키우지 않는 대신, 작은 두레방을 다른 기지촌에서 또 시작했습니다 . 캠프 레드클라우즈 근처에는 주한 미군과 국제결혼을 했거나 동거중인 여성들이 많이 있었다면, 송산의 캠프 스탠리 지역에는 미군전용클럽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송산 지역을 마음에 두고 자주 다니며 언니들이 만만하게 들어올 수 있는 문턱 낮은 두레방이고자 했습니다 . 송산 두레방에서는 ‘ 두레방빵 ’ 사업도 시작했습니다 . 기지촌 여성들은 이른 나이에 은퇴를 하게 됩니다 . 상품으로서의 성의 가치가 빨리 사라지는 것이지요 . 그래서 여성들의 다시서기 프로그램이 필요했습니다. 요리 솜씨 좋은 문 선생님의 지도로 4명의 언니들이 함께 빵을 만들면 이화여대 , 연세대 등 대학과 경실련 같은 시민단체 그리고 교회에서 주문을 해주었습니다 . 수익은 내지 못했지만 그 의미와 상징성은 상당했습니다 . 우리는 은퇴한 언니들을 현장 출신 활동가라 이름짓고, 강연 함께 가기 , 연극 관람과 공연하기 , 송산지역 여성들 함께 방문하기 등을 함께 했습니다 . 초등학교만 다녔거나 직장 경험이 전혀 없는 언니들에게 공식 원장이자 상근 활동가인 저와 똑같이 급여를 지급했습니다. 그 결정은 지금 생각해도 자랑스럽습니다 . ‘ 기활’(기지촌 체험 활동)도 두레방에서 시작했습니다. 연세대 총여학생회를 시작으로 이화여대 , 서강대 , 상명대 , 성균관대 등에서 기지촌 여성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불러주었습니다 . 대학들 에게 농활(농촌 체험) , 공활(공장 체험)은 있는데 왜 기활은 없느냐는 질문을 계속 던졌고, 마침내 학생들이 응답해주었습니다 . 신청하는 학생들이 많아 6:1 의 경쟁을 뚫고 기활을 온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 따뜻한 마음과 훌륭한 자세를 가진 자원활동가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 덕분에 세번째 두레방을 열게 되었습니다 . 동두천시 보산동 캠프케이시 옆 골목에 자리한 두레방은 학생운동 출신 자원활동가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빠르게 정착했습니다. 지난 2021년 여름 미국으로 떠나시는 문 선생님을 모시고 송별 예배를 드린 것이 마지막 만남이 되었습니다 . 많이 여위고 쇠약해진 선생님은 우리를 잘 못 알아보셨지만 해맑은 아기의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 20 대 끝자락에서 선생님을 만나 30대 중반까지 , 제 삶의 가장 빛나는 아름다운 시절을 선물해주신 문 선생님 , 고맙고 그립습니다 . 영미와 영혜, 그리고 창근과 태근의 엄마이셨고 저와 언니들의 엄마이셨던 문혜림 선생님, 부디 편히 가세요 유복임/두레방 초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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