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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May 14, 2023

관리번호 K76-2764 “무적아, 입양 승낙합니다” - 한겨레

[조작된 입양-상]
“농사 짓는 부모와 초가집 살아”
친부모 여부·출생기록 허위 확인
실제론 한부모가정에 입양돼
“불법성 뚜렷” DKRG에 조사 신청
윌리엄의 입양 서류(왼쪽)에 있는 그의 사진과 관리번호 ‘K76-2764’. 오른쪽 하단 사진은 윌리엄이 보내온 최근 사진.
윌리엄의 입양 서류(왼쪽)에 있는 그의 사진과 관리번호 ‘K76-2764’. 오른쪽 하단 사진은 윌리엄이 보내온 최근 사진.
<한겨레>는 창간 35돌 기획으로 국제입양인 20명의 이야기를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지난 5월11일은 입양의 날이었고 올해는 국제입양 70주년이다. 칠레·아일랜드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국가 차원의 인권침해 조사를 곧 시작하기도 한다. 산 역사의 주인공들을 섭외해준 ‘덴마크 한국인 진상규명 그룹’(DKRG)은 덴마크를 비롯한 스웨덴, 노르웨이, 독일, 네덜란드, 미국 등 10개국에서 650여명이 가입한 세계 최대의 한인 입양인 커뮤니티다. 지난해 8월부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334건의 입양 사례를 제출하며 조사를 신청해 12월 ‘해외입양과정 인권침해 사건’ 조사 개시를 이끌어낸 바 있다. 진실화해위는 오는 6월부터 코펜하겐·오슬로 등 현지 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세계 20만명으로 추산되는 국제입양인들의 이목이 여기에 쏠려 있다. <한겨레>는 영아 매매, 기록 위조 등 출생과 함께 부당하게 취급된 자신들의 역사를 뒤져 진실과 정의를 회복하려는 국제입양인들의 열망을 존중한다. 20명이 짧게 쏟아낸 과거사 속엔 조사 대상자로서 진실화해위에 거는 기대가 함께 담겨 있다.
윌리엄 보르히스(입양때 7살, 54살 추정, 미국) “상기 아동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합니다.” 1976년 9월22일, 대전 대덕구 성실아동원 김봉희 원장의 직인으로 이정원(당시 7살)군의 해외입양 승낙이 이뤄졌다. 출생지 ‘모름’, 아빠 ‘기록 없음’, 엄마 ‘기록 없음’. 이군은 갈 곳 없는 ‘무적아’, 즉 고아였다. 고아였기 때문에 당시 고아입양특례법(1961년 제정)에 따라 이군이 속한 보호 시설장의 동의만 있어도 입양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입양 서류에 있는 ‘이정원’이란 이름과 생년월일(1969년 1월14일), 그에게 부여된 관리번호 ‘K76-2764’만이 그의 정체성을 증명했다. 이군은 그해 12월23일, 후견인 자격의 홀트아동복지회 승인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보르히스’란 성을 지닌 남성에게 입양됐다. 보르히스를 따라 도착한 곳에서 이정원은 ‘윌리엄 보르히스’(William Vorhees)란 이름으로 불렸다. 고아입양특례법에 따라 해외입양에 간 많은 사례 중 한 사람, 윌리엄은 이렇게 다시 태어났다. 하지만 윌리엄은 2017년 자신의 입양 서류를 처음 본 뒤, 의문을 가졌다. 대표적으로 그의 입양 서류에는 양모의 기록이 없었다. 양모 주소가 일부 지워진 흔적만 남아 있다. 1976년 고아입양특례법을 보면 제3조에는 ‘양친(부친과 모친)’의 자격이 명시돼 있다. 그런데 그는 양어머니가 없는 한부모 가정에 입양된 것이다. 이를 토대로 윌리엄은 자신의 입양 과정이 적법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덴마크 한국인 진상규명 그룹’(DKRG)을 통해 지난해 8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입양 과정에서 겪은 인권침해 여부를 판단해 달라”며 조사를 신청했다. <한겨레>는 진실화해위에 진실 규명을 신청한 이들의 편지를 모아 ‘해외입양’ 문제를 다시 환기하고자 한다. 이 가운데 “입양의 불법성이 뚜렷하다”며 구체적으로 자신의 기억을 증언하는 윌리엄을 지난 6일 화상으로 따로 인터뷰했다. 그는 입양인 편지의 첫번째 사람이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이정원’이란 이름과 생년월일도 거짓으로 작성됐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윌리엄의 입양 서류 한 공간에는 그의 ‘적’을 유추할 수 있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엄마가 삯바느질하며 아동을 키우다가 가출하여 아동이 시설로 오게 됐다고 한다.” 누가, 언제 적었는지도 현재 알 수 없다. 윌리엄은 “입양 서류엔 (친어머니가) 미혼이라고 했지만, 내 기억엔 아버지와 엄마의 기억이 또렷하다”며 “(입양 서류가) 거짓으로 작성됐다고 본다”고 했다. 앞서 진상규명 그룹은 진실화해위에 진실 규명을 신청한 뒤 지난해 10월 “친부모 생존 여부, 출생기록을 허위로 작성했다”고 답변한 한국사회봉사회의 편지를 공개하며 ‘불법 입양’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자신이 “납치돼 시설에 왔다”고 했다. 윌리엄은 “농산물을 팔러 간다”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도시의 한 시장에 방문했다고 한다. 그때 어머니는 긴 옷에 발가락이 뾰족한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고 윌리엄은 회상했다. 윌리엄은 “갑자기 한 남자가 저를 끌고 갔다. 당시에 크게 울었지만, 소용없었다”며 “그 뒤로 기억나는 건 내가 성실아동원에 있었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이후 그는 홀트아동복지회 쪽으로 옮겨져 입양 절차가 진행됐다.
‘성인의 말귀 다 알아듣고 동요는 물론 유행가도 잘 부른다. 낮잠은 잘 안 자며 먹는 것은 원내에서 주는 대로 잘 먹는다.’ ‘성인들에게 순종적이며 낯선 사람과도 곧 어울린다.’ ‘신장 체중 동년 수준에 준한다. 정상아동으로 성장하리라 기대된다.’(윌리엄의 ‘입양 서류’ 중 일부)
“나의 양어머니는 왜 없었는지, 양어머니도 없이 어떻게 입양이 가능했는지 아버지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의 양아버지도 그에게 입양의 진실을 확인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윌리엄은 “어머니와 아버지는 열심히 일하는 농부였다”며 ‘이정원’으로 살았던 당시를 증언했다. 그는 “우리 집은 초가지붕에 진흙 벽과 한지 문이 있는 가옥이었다. 대전 근교 농촌의 한 마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며 “부엌은 (집 정문 기준으로) 왼쪽에 있었고 전통적인 장작 난로도, 곡물이 들어 있는 3개의 큰 물통도 있었다. 집 뒤에는 김장독 3개가 땅에 묻혀 있었다”고 했다. 입양 서류에선 없었던 그의 적이 기억 속에서는 명확하게 존재했다. 윌리엄은 친아버지에 대해선 “키는 작았지만 강인한 분”이었다고 했다. 그는 집 앞에 쌓인 짚더미 옆에 아버지가 앉아 빠르게 새끼를 꼬던 모습도 기억했다. “땅바닥에서 놀고 있었는데, 아버지 손이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지 신기하게 보던 기억이 난다.”
지난 6일 윌리엄 보르히스가 화상으로 &lt;한겨레&gt;와 인터뷰하고 있다.
지난 6일 윌리엄 보르히스가 화상으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2017년 자신의 입양 서류를 처음으로 확인했다. 그동안 서랍에 넣어두고선 확인하지 않았던 진실이었다. 윌리엄은 “평생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몰랐기 때문에 무가치하게 느끼며 살아왔다. 목숨을 끊고 싶은 생각도 했다. 그래서 입양 서류도 두려워 읽지 못했다”고 말했다. 서류의 기록과 그의 기억이 상충한다는 사실도 최근에야 알게 됐다. 윌리엄은 “일곱살 때 한국에서의 기억은 나와 평생을 함께했다. 이제 성인이 된 자녀를 둔 부모로서 아이 중 한 명이 납치됐다면 난 평생을 찾아 헤맸을 것”이라며 “(진실규명 요청은) 어떤 보상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나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존재하고 있는지 알고 싶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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