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hercher dans ce blog

Tuesday, May 16, 2023

“계엄군, 5·18 진압작전 끝난 뒤에도 시민 사살했다” - 한겨레

5·18진상조사위 대국민 보고회
1980년 5월27일 시민군 거점이었던 옛 전남도청 인근 와이엠시에이(YMCA) 건물 앞에 총을 맞고 앉아 있는 김종연씨. 오른쪽에 총이 놓여 있다.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 제공
1980년 5월27일 시민군 거점이었던 옛 전남도청 인근 와이엠시에이(YMCA) 건물 앞에 총을 맞고 앉아 있는 김종연씨. 오른쪽에 총이 놓여 있다.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 제공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5월27일 진압작전이 끝난 뒤에도 시민을 사살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계엄군이 공격용 헬기를 동원해 벌컨포 사격 연습까지 한 사실도 밝혀져 전두환 신군부의 ‘자위권’ 주장이 허구임이 드러났다. 16일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가 발표한 조사 내용을 보면, 계엄군은 1980년 5월27일 광주 진압작전이 끝난 뒤 광주 와이엠시에이(YMCA) 건물에 은신해 있다가 밖으로 나온 김종연(당시 19·재수생)씨를 총으로 쐈다. 지난 6일 광주에 온 프랑스 사진작가 파트리크 쇼벨은 조사위에 “김씨가 (길 건너 전일빌딩 8층에서 취재하던) 나를 향해 손을 들어 ‘헬프 미’라고 소리쳤다”고 증언했다. 와이엠시에이 앞을 지나가던 계엄군 장갑차 위에서 군인이 쇼벨을 향해서도 총격을 가했다. 쇼벨은 “몸을 숨겼다가 다시 창밖을 보니 청년(김씨)이 쓰러져 있었고, 한참 후 현장에 갔더니 사망했다”고 진술했다. 검찰 검시 조서를 보면, 김씨는 전신 다발성 총상을 입었다. 김씨의 주검은 5월27일 와이엠시에이에서 사살된 뒤 합판에 실려 전남도청 뒤편 정원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총격으로 상처를 입은 시민을 사살한 사례는 또 있다. 조사위 보고서를 보면, 11공수특전여단 소속의 군인이 5월23일 광주시 동구 주남마을 미니버스에 탑승해 있다가 공수부대 총격을 받고 다친 채수길·양민석씨 등 2명을 주남마을 안 11공수여단 주둔지로 끌고 가 사살한 뒤 암매장했다. 조사위는 “민간인 2명을 사살한 뒤 암매장한 군인은 채씨의 사촌으로 확인됐고 그 군인이 그들을 사살하고 암매장한 사실을 인정한 진술을 영상으로 확보했다”고 밝혔다. 또 조사위는 5·18 당시 어린이 행방불명자 이창현(당시 7)군의 마지막 모습이 찍힌 사진을 확보해 이동 경로를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어린이는 앞서 노먼 소프 전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가 찍은 사진과 국외 방송사가 찍은 영상에 이동춘 목포과학대 교수에게 안겨 있는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했다.(<한겨레> 2021년 5월10일치 12면) 조사위는 당시 버스에 타고 있던 이군 등 어린이 3명 중 조아무개(당시 11)군이 아동복지시설로 옮겨져 입양된 사실을 확인했다. 허연식 조사2과장은 “그동안 실종자는 암매장과 연관해 조사했는데 조군의 입양 사실을 확인하며 이군도 입양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전국의 아동복지시설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사진기자 프랑수아 로숑과 파트리크 쇼벨이 1980년 5월27일 아침 계엄군의 옛 전남도청 진압작전 직후 찍은 군버스. 실종된 것으로 알려진 이창현군(붉은 원)의 마지막 모습이다. 5·18기념재단 제공
프랑스 사진기자 프랑수아 로숑과 파트리크 쇼벨이 1980년 5월27일 아침 계엄군의 옛 전남도청 진압작전 직후 찍은 군버스. 실종된 것으로 알려진 이창현군(붉은 원)의 마지막 모습이다. 5·18기념재단 제공
최근 5·18 희생자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돼 암매장 의혹이 밝혀질지 주목된다. 조사위는 전남 영암 공동묘지 6구, 해남 군부대 인근 5구, 광주교도소 앞 야산 1구 등 모두 12구의 유해를 발굴해 유전자 조사 등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 이 가운데 지난 14일 해남군 해남읍 백야리 예비군훈련장 인근 야산에서 발굴한 유골 3구는 정밀감식 중이다. 하지만 5·18연구자인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은 “군 기록에는 해남에서 발생한 희생자 3명을 해당 지역에 가매장했고 주검 2구를 가족이 찾아갔다고 나온다. 희생자가 더 있을 순 있지만 아직 단정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전남 해남에서 5·18 관련자로 보이는 유골을 수습하고 있다. 조사위 제공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전남 해남에서 5·18 관련자로 보이는 유골을 수습하고 있다. 조사위 제공
계엄군의 헬기 사격과 관련한 물증도 확보했다. 조사위는 지난해 3월 광주 동구 조선대학교 뒷산에서 20㎜ 벌컨포 연습탄두 1개를 확보했다. 탄두가 발견된 곳은 계엄군 주요 지휘관들이 검찰에서 진술한 ‘공격헬기’ 코브라의 사격 지점과 일치한다. 조사위 쪽은 “계엄군이 벌컨 연습탄 사격까지 한 정황을 발견하고 사실 관계를 정밀히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관련기사

Adblock test (Why?)


“계엄군, 5·18 진압작전 끝난 뒤에도 시민 사살했다” - 한겨레
Read More

'7·8월 매일 비' 날씨 달력은 진짜?…“두세달 뒤 날씨 예측 못 해” - 한겨레

기상청 “단순 예측값…중기예보는 최대 열흘”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제공하는 날씨 예측 서비스가 2023년 8월 부산에 29일 동안 비가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마이크로소프트 누리집 갈무리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제공하는 날씨 예측 서비스가 2023년 8월 부산에 29일 동안 비가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마이크로소프트 누리집 갈무리
“(7월 서울에) 비 오는 날이 28일 있습니다.” “(8월 서울에) 비 오는 날이 29일 있습니다.” 최근 온라인에서 오는 7~8월 서울 등 전국 날씨가 사나흘을 빼고 모두 비가 내린다는 ‘날씨 예보 달력’이 퍼지고 있어 ‘실제 상황’이냐고 묻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기상청은 실제 이러한 예측이 맞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고 본다. 16일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보면, 마이크로소프트가 제공하는 ‘2023년 7월 서울 날씨 예보’ 갈무리 사진이 확산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누리집 예측 결과를 보면, 7월 서울에는 7일과 20일, 26일을 제외한 28일 동안 비가 내릴 것이라고 예보됐다. 8월에도 17일과 31일 이틀을 제외한 날에 비가 올 것이라 예상했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제공하는 날씨 예측 서비스가 2023년 8월 서울에 29일 동안 비가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마이크로소프트 누리집 갈무리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제공하는 날씨 예측 서비스가 2023년 8월 서울에 29일 동안 비가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마이크로소프트 누리집 갈무리
서울뿐만 아니라 부산이나 인천 등에서도 비슷한 예보가 나왔다. 부산은 7월엔 20일 동안, 8월엔 29일가량 비가 내릴 것이라 봤다. 인천은 7월엔 단 하루를 제외한 모든 날에 비가 내리고, 8월엔 28일간 비가 올 것이라 표시돼있다. 다만 마이크로소프트는 누리집 날씨 페이지에서 “월별 예측은 지난 30년 동안의 기록 레코드를 기반으로 하는 예측값이다. 가장 정확한 정확도를 위해 새로 관찰된 데이터를 사용하는 10일 예측과 다르다”며 실제 날씨와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예측을 두고 온라인에서는 “8월에는 빛을 보지 못하겠다”거나 “노아의 대홍수냐” 등의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기상청은 이러한 예측 결과가 실제 맞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본다. 기상청 관계자는 16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통상 현재 (날씨) 실황 값을 수치모델에 대입해 예측값을 얻는데, 관측 등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오차가 예측 기간이 길어질수록 변동 폭이 굉장히 커진다”며 “전 세계적으로 두세 달 뒤의 일별 날씨를 예측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기상청에서 관측하는 중기예보도 최대 열흘”이라며 “마이크로소프트가 어떤 모델을 이용해 날씨를 예측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모델이 출력한 부정확한) 단순 예측값을 서비스 측면에서 제공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기상청이 제공하는 2013~23년 전국 월별 강수일수 통계를 보면, 지난 10년간 강수일수가 가장 많았던 달은 2020년 7월로 전국 평균 18.9일간 비가 내렸다. 이 기간에 전국 월별 강수일수가 20일을 넘긴 경우는 없었다. 같은 기간 서울에 강수일수가 가장 많았던 기간은 2013년 7월로, 25일간 비가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같은 해 8월 서울엔 12일만 비가 내렸다. 강재구 기자 j9@hani.co.kr
관련기사

Adblock test (Why?)


'7·8월 매일 비' 날씨 달력은 진짜?…“두세달 뒤 날씨 예측 못 해” - 한겨레
Read More

Monday, May 15, 2023

[속보]'200억대 사기대출' 혐의, 민주당 의원 아들 구속영장 기각 - 한겨레

“증거 인멸·도주 우려 낮아”
‘200억대 사기대출’과 관련한 혐의를 받는 광덕안정 대표와 재무담당 이사가 1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억대 사기대출’과 관련한 혐의를 받는 광덕안정 대표와 재무담당 이사가 1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억 원대 사기 대출’ 혐의를 받는 현직 국회의원 아들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5일 사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입건된 한방병원 프랜차이즈 업체 광덕안정의 대표 ㄱ씨와 재무담당 이사 ㄴ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유 부장판사는 “관련자 진술을 비롯해 현재까지 확보된 자료들과 전반적인 사실관계를 인정하는 피의자의 태도, 법원의 심문 결과에 의할 때 증거 인멸이나 도망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도 있다는 점 등도 종합하면 현 단계에서는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ㄱ씨는 더불어민주당 현역 의원의 아들로 2017년 광덕안정을 설립해 모두 42곳의 가맹 한의원과 한방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검찰은 ㄱ씨와 ㄴ씨가 2019년부터 개업을 원하는 한의사 30여명에게 10억 원대의 잔액 증명서를 허위로 만들어주고, 신용보증기금 ‘예비창업보증 제도'를 활용해 200억 원대 대출을 받게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예비창업보장 제도는 창업 전 6개월 이내의 창업 초기기업을 대상으로 본인 자본을 최대 10억원까지 100% 보증해주는 제도다. 신용보증기금이 보증서를 발급해주면 해당 기업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방식이다.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이날 오전 서울중앙지법 출입구에 도착한 ㄱ씨는 ‘혐의를 인정하냐’, ‘허위로 대출받은 돈은 어디에 썼느냐’ 등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곧장 법정으로 들어갔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Adblock test (Why?)


[속보]'200억대 사기대출' 혐의, 민주당 의원 아들 구속영장 기각 - 한겨레
Read More

서울시의회, 기초학력 지원 조례안 의장 직권 공포 - YTN

서울시의회, 기초학력 지원 조례안 의장 직권 공포
서울시의회는 오늘 서울 초중고등학교에서 실시하는 기초학력 진단검사 결과를 외부에 공개하는 내용의 조례안을 의장 직권으로 공포했습니다.

기초학력 지원 조례안은 서울 교육감이 지난달 3일 재의를 요구했지만 지난 3일 본회의에서 재의결됐습니다.

지방자치법에 따르면 재의결한 조례를 교육청으로 이송하면 교육감이 지체 없이 공포해야 하고 교육감이 5일 이내에 공포하지 않으면 지방의회의장이 조례를 공포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은 기초학력 보장 지원 조례는 법령을 준수하면서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재의결된 조례라며 법령위반과 무관한 사항이라고 말했습니다.

앞서 서울시교육청은 이 조례안을 대법원에 제소하고 집행정지결정도 신청하기로 했습니다.

YTN 김종균 (chongkim@ytn.co.kr)

※ '당신의 제보가 뉴스가 됩니다'
[카카오톡] YTN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02-398-8585
[메일] social@ytn.c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Adblock test (Why?)


서울시의회, 기초학력 지원 조례안 의장 직권 공포 - YTN
Read More

Sunday, May 14, 2023

관리번호 K76-2764 “무적아, 입양 승낙합니다” - 한겨레

[조작된 입양-상]
“농사 짓는 부모와 초가집 살아”
친부모 여부·출생기록 허위 확인
실제론 한부모가정에 입양돼
“불법성 뚜렷” DKRG에 조사 신청
윌리엄의 입양 서류(왼쪽)에 있는 그의 사진과 관리번호 ‘K76-2764’. 오른쪽 하단 사진은 윌리엄이 보내온 최근 사진.
윌리엄의 입양 서류(왼쪽)에 있는 그의 사진과 관리번호 ‘K76-2764’. 오른쪽 하단 사진은 윌리엄이 보내온 최근 사진.
<한겨레>는 창간 35돌 기획으로 국제입양인 20명의 이야기를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지난 5월11일은 입양의 날이었고 올해는 국제입양 70주년이다. 칠레·아일랜드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국가 차원의 인권침해 조사를 곧 시작하기도 한다. 산 역사의 주인공들을 섭외해준 ‘덴마크 한국인 진상규명 그룹’(DKRG)은 덴마크를 비롯한 스웨덴, 노르웨이, 독일, 네덜란드, 미국 등 10개국에서 650여명이 가입한 세계 최대의 한인 입양인 커뮤니티다. 지난해 8월부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334건의 입양 사례를 제출하며 조사를 신청해 12월 ‘해외입양과정 인권침해 사건’ 조사 개시를 이끌어낸 바 있다. 진실화해위는 오는 6월부터 코펜하겐·오슬로 등 현지 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세계 20만명으로 추산되는 국제입양인들의 이목이 여기에 쏠려 있다. <한겨레>는 영아 매매, 기록 위조 등 출생과 함께 부당하게 취급된 자신들의 역사를 뒤져 진실과 정의를 회복하려는 국제입양인들의 열망을 존중한다. 20명이 짧게 쏟아낸 과거사 속엔 조사 대상자로서 진실화해위에 거는 기대가 함께 담겨 있다.
윌리엄 보르히스(입양때 7살, 54살 추정, 미국) “상기 아동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합니다.” 1976년 9월22일, 대전 대덕구 성실아동원 김봉희 원장의 직인으로 이정원(당시 7살)군의 해외입양 승낙이 이뤄졌다. 출생지 ‘모름’, 아빠 ‘기록 없음’, 엄마 ‘기록 없음’. 이군은 갈 곳 없는 ‘무적아’, 즉 고아였다. 고아였기 때문에 당시 고아입양특례법(1961년 제정)에 따라 이군이 속한 보호 시설장의 동의만 있어도 입양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입양 서류에 있는 ‘이정원’이란 이름과 생년월일(1969년 1월14일), 그에게 부여된 관리번호 ‘K76-2764’만이 그의 정체성을 증명했다. 이군은 그해 12월23일, 후견인 자격의 홀트아동복지회 승인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보르히스’란 성을 지닌 남성에게 입양됐다. 보르히스를 따라 도착한 곳에서 이정원은 ‘윌리엄 보르히스’(William Vorhees)란 이름으로 불렸다. 고아입양특례법에 따라 해외입양에 간 많은 사례 중 한 사람, 윌리엄은 이렇게 다시 태어났다. 하지만 윌리엄은 2017년 자신의 입양 서류를 처음 본 뒤, 의문을 가졌다. 대표적으로 그의 입양 서류에는 양모의 기록이 없었다. 양모 주소가 일부 지워진 흔적만 남아 있다. 1976년 고아입양특례법을 보면 제3조에는 ‘양친(부친과 모친)’의 자격이 명시돼 있다. 그런데 그는 양어머니가 없는 한부모 가정에 입양된 것이다. 이를 토대로 윌리엄은 자신의 입양 과정이 적법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덴마크 한국인 진상규명 그룹’(DKRG)을 통해 지난해 8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입양 과정에서 겪은 인권침해 여부를 판단해 달라”며 조사를 신청했다. <한겨레>는 진실화해위에 진실 규명을 신청한 이들의 편지를 모아 ‘해외입양’ 문제를 다시 환기하고자 한다. 이 가운데 “입양의 불법성이 뚜렷하다”며 구체적으로 자신의 기억을 증언하는 윌리엄을 지난 6일 화상으로 따로 인터뷰했다. 그는 입양인 편지의 첫번째 사람이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이정원’이란 이름과 생년월일도 거짓으로 작성됐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윌리엄의 입양 서류 한 공간에는 그의 ‘적’을 유추할 수 있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엄마가 삯바느질하며 아동을 키우다가 가출하여 아동이 시설로 오게 됐다고 한다.” 누가, 언제 적었는지도 현재 알 수 없다. 윌리엄은 “입양 서류엔 (친어머니가) 미혼이라고 했지만, 내 기억엔 아버지와 엄마의 기억이 또렷하다”며 “(입양 서류가) 거짓으로 작성됐다고 본다”고 했다. 앞서 진상규명 그룹은 진실화해위에 진실 규명을 신청한 뒤 지난해 10월 “친부모 생존 여부, 출생기록을 허위로 작성했다”고 답변한 한국사회봉사회의 편지를 공개하며 ‘불법 입양’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자신이 “납치돼 시설에 왔다”고 했다. 윌리엄은 “농산물을 팔러 간다”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도시의 한 시장에 방문했다고 한다. 그때 어머니는 긴 옷에 발가락이 뾰족한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고 윌리엄은 회상했다. 윌리엄은 “갑자기 한 남자가 저를 끌고 갔다. 당시에 크게 울었지만, 소용없었다”며 “그 뒤로 기억나는 건 내가 성실아동원에 있었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이후 그는 홀트아동복지회 쪽으로 옮겨져 입양 절차가 진행됐다.
‘성인의 말귀 다 알아듣고 동요는 물론 유행가도 잘 부른다. 낮잠은 잘 안 자며 먹는 것은 원내에서 주는 대로 잘 먹는다.’ ‘성인들에게 순종적이며 낯선 사람과도 곧 어울린다.’ ‘신장 체중 동년 수준에 준한다. 정상아동으로 성장하리라 기대된다.’(윌리엄의 ‘입양 서류’ 중 일부)
“나의 양어머니는 왜 없었는지, 양어머니도 없이 어떻게 입양이 가능했는지 아버지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의 양아버지도 그에게 입양의 진실을 확인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윌리엄은 “어머니와 아버지는 열심히 일하는 농부였다”며 ‘이정원’으로 살았던 당시를 증언했다. 그는 “우리 집은 초가지붕에 진흙 벽과 한지 문이 있는 가옥이었다. 대전 근교 농촌의 한 마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며 “부엌은 (집 정문 기준으로) 왼쪽에 있었고 전통적인 장작 난로도, 곡물이 들어 있는 3개의 큰 물통도 있었다. 집 뒤에는 김장독 3개가 땅에 묻혀 있었다”고 했다. 입양 서류에선 없었던 그의 적이 기억 속에서는 명확하게 존재했다. 윌리엄은 친아버지에 대해선 “키는 작았지만 강인한 분”이었다고 했다. 그는 집 앞에 쌓인 짚더미 옆에 아버지가 앉아 빠르게 새끼를 꼬던 모습도 기억했다. “땅바닥에서 놀고 있었는데, 아버지 손이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지 신기하게 보던 기억이 난다.”
지난 6일 윌리엄 보르히스가 화상으로 &lt;한겨레&gt;와 인터뷰하고 있다.
지난 6일 윌리엄 보르히스가 화상으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2017년 자신의 입양 서류를 처음으로 확인했다. 그동안 서랍에 넣어두고선 확인하지 않았던 진실이었다. 윌리엄은 “평생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몰랐기 때문에 무가치하게 느끼며 살아왔다. 목숨을 끊고 싶은 생각도 했다. 그래서 입양 서류도 두려워 읽지 못했다”고 말했다. 서류의 기록과 그의 기억이 상충한다는 사실도 최근에야 알게 됐다. 윌리엄은 “일곱살 때 한국에서의 기억은 나와 평생을 함께했다. 이제 성인이 된 자녀를 둔 부모로서 아이 중 한 명이 납치됐다면 난 평생을 찾아 헤맸을 것”이라며 “(진실규명 요청은) 어떤 보상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나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존재하고 있는지 알고 싶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관련기사

Adblock test (Why?)


관리번호 K76-2764 “무적아, 입양 승낙합니다” - 한겨레
Read More

“고아라는 것도, 양어머니 존재도 모두 거짓이었다” - 한겨레

[조작된 입양-상]
한겨레>는 창간 35돌 기획으로 국제입양인 20명의 이야기를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지난 5월11일은 입양의 날이었고 올해는 국제입양 70주년이다. 칠레·아일랜드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국가 차원의 인권침해 조사를 곧 시작하기도 한다. 산 역사의 주인공들을 섭외해준 ‘덴마크 한국인 진상규명 그룹’(DKRG)은 덴마크를 비롯한 스웨덴, 노르웨이, 독일, 네덜란드, 미국 등 10개국에서 650여명이 가입한 세계 최대의 한인 입양인 커뮤니티다. 지난해 8월부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334건의 입양 사례를 제출하며 조사를 신청해 12월 ‘해외입양과정 인권침해 사건’ 조사 개시를 이끌어낸 바 있다. 진실화해위는 오는 6월부터 코펜하겐·오슬로 등 현지 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세계 20만명으로 추산되는 국제입양인들의 이목이 여기에 쏠려 있다. 한겨레>는 영아 매매, 기록 위조 등 출생과 함께 부당하게 취급된 자신들의 역사를 뒤져 진실과 정의를 회복하려는 국제입양인들의 열망을 존중한다. 20명이 짧게 쏟아낸 과거사 속엔 조사 대상자로서 진실화해위에 거는 기대가 함께 담겨 있다.
서류에 6개월 머문 고아원 실제 나는 그곳에 없었다
베티나(입양 당시 6개월, 현재 49살, 덴마크)
입양 서류상 저는 1974년 2월7일에 태어났고, 한국 이름은 조정희입니다. 젊은 미혼 여성이 저를 낳고 생년월일이 적힌 종이 한장을 ‘바다의 별’ 가톨릭 어린이집 앞에 두고 떠났습니다. 그해 8월15일 누군가 저를 비행기에 태웠습니다. 이틀 뒤 생후 6개월 아기로 덴마크에 와 입양됐다고 합니다. 2019년 양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한국에서 친가족 찾기를 시작했습니다. 마포경찰서에 갔습니다. 디엔에이(DNA) 검사를 받았습니다. 생모가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의 커뮤니티센터를 찾아갔어요. (제 사건 파일에 기록된) 생후 6개월 동안 머문 고아원에서는 제가 그곳에 머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났고, 첫 3개월간 생모와 지냈으며, 생모가 1974년 5월9일 저를 한국사회봉사회로 데려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완전한 입양 파일을 얻을 수는 없었습니다. 받은 문서엔 수정 사항이 있었고, 친부모와 저에 대한 새 정보가 없었습니다.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2022년 11월 다시 한국에 와 수정을 거치지 않은 파일 사본을 받았고, 번역자의 도움을 받아 손글씨로 된 한글과 한자를 해독했습니다. 그 결과 친부모가 없는 상황에서 법적 후견인이 됐던 한국사회봉사회 대표가 제 성과 이름을 지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파일에는 당시 24살이었던 생모 이름과 생년월일, 제가 태어난 곳 주소가 적혀 있었습니다. 입양인이 입양 서류에 접근할 권리를 제대로 주었으면 합니다. 지금 친가족을 찾는 일은 정말 복잡합니다. 덴마크한국인진상규명그룹(DKRG)은 이제 막 그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 시작했죠. 밝혀내야 할 게 너무 많아서 시간과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입양때 모습 사진 두장 정말로 내가 맞는걸까
미 슐리크테르(입양 당시 3살, 현재 46살, 덴마크)
미 슐리크테르가 갖고 있는 자신의 입양 당시 사진(위 두 사진). 그는 이 사진 속 아이가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 슐리크테르가 갖고 있는 자신의 입양 당시 사진(위 두 사진). 그는 이 사진 속 아이가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입양 이야기―버전 1 3살 때 덴마크에 도착해 두 자녀를 둔 가정에 입양되었습니다. 그들은 고아를 돕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 고 있었습니다. 안전하고 행복한 어 린 시절을 보냈지만, 때때로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느낌을 갖지는 못했습니다. 입양 이야기―버전 2 이 이야기를 알게 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 다. 우연한 기회에 많은 분의 도움으 로 제 입양 이야기의 조각을 맞춰나갔습니다. 저는 1976년 12월16일, 3살 조금 넘어 덴마크에 도착했습니다. 양부모는 3주 전 공항에 왔는데, 제가 비행기에 타지 않았다 하여 다시 집으로 돌아갔죠. 현재로서는 그때 그 아이가 비행기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실하지 않습니다. 사진 속 아이가 저라는데, 두 사진이 같은 아이가 아닐 수도 있음을 최근에 알아냈습니다. 제 사진이 아 닐 수 있습니다. 생년월일은 여러번 바뀌었고, 덴마크 도착 직전 심각하 게 아팠던 것으로 나옵니다. 정말 제가 아팠을까요, 아니면 도착하 지 못한 다른 아이가 아팠을까요? 그게 사실이라면 저는 누구일까요? 진실화해위원회에 바랍니다. 사진 속 인물 을 찾아주세요. 제가 갑자기 입양됐다면 제 입양 이야기 중 맞지 않는 부분은 어디일까요? 제가 길 거리에서 발견된 고아가 아닐 수도 있나요? 한국에 저를 그 리워했거나 아직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입양·출입국 기록 달라 그것조차 사실인지 의문
메리 바워스(입양 당시 5개월 추정, 현재 40살 또는 41살, 미국)
첫 기억 중 하나는 양할머니가 케이크를 장식하는 모습입니다. 케이크는 3층이었고 버터크림으로 만들어진 꽃들이 있었어요. 빛나는 별처럼 별사탕이 반짝였어요. 그 케이크 안에 들어가서 눈 덮인 언덕에서 썰매를 타고 싶었습니다. 케이크에 대한 집착이 행복한 기억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상상하고 싶지만, 그다지 축하할 만한 인연은 아닙니다. 입양 기록과 출입국 서류, 한국의 양음력까지 고려하면 저는 다섯개 생년월일을 가졌습니다. 다 합치면 기대수명은 약 433년 정도. 하지만 언제 태어났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사회는 그런 운명에 처하게 된 저에게 “운이 좋았다”고 말합니다. 참수되기 전의 마리 앙투아네트처럼 생일 케이크를 먹을 수 있는 미국의 입양 가정에서 자랐으니까요. 정체성, 가족, 국가로부터 폭력적으로 단절된 공주라고 해도 동정은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바닐라 프로스팅을 먹으며 층 사이에 감정을 숨깁니다.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깊은 슬픔이 밀려옵니다. 감정은 솔직한 법입니다. 세상은 제가 상상할 수 없었던 무대에서 평범하지 않은 진실을 환영해주었습니다. 낯선 이들이 상처받은 마음에 위로를 주기도 했습니다. 그 교감의 순간들을 기억합니다. 끔찍한 아동학대, 무고한 피해자의 수치심, 반인륜적 범죄에 장미 장식을 입히고 이를 ‘케이크’라고 선언하는 일을 계속해서는 안 됩니다.
‘생계탓 포기’ 서류와 달리 친부모 ‘아기 죽었다’ 들어
미아 리 쇠렌센 (입양 당시 9개월, 현재 35살, 덴마크)
제 삶은 덴마크에 오기 9개월 전 1987년 광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엄마는 임신 25주였을 때 급하게 가까운 병원으로 실려 가 저를 낳았습니다. 아기가 심각한 손상 없이 살아남은 것은 기적이었습니다. 병원에서 오랫동안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덴마크 코펜하겐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제가 어디에 얼마나 있었는지, 누가 제 인생에 대해 이런 끔찍한 결정을 내렸는지 알 수 없습니다. 부모가 돈이 없어 저를 키울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믿어왔습니다. 제가 더 나은 삶을 살도록 외국으로 보내줬다고 생각했습니다. 입양 서류에 적힌 내용입니다. 그러나 지난해 그들과 재회했을 때 입양 서류가 전부 가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친가족은 제가 태어날 때 죽었다고 생각했고, 저는 가족들이 가난해서 저를 버렸다고 여겼습니다. 또 덴마크 양부모는 입양을 통해 저에게 더 나은 삶을 살게 해줬다고 믿었습니다. 많은 의문에 대한 답을 얻었지만, 진실을 더 알아야 합니다. 누가 나와 친가족에게 이런 짓을 했는지, 한국에 머무는 동안 나는 어디 있었는지, 누가 내 인생을 그렇게 끝내고 시작할 권리를 행사했는지, 내 생년월일은 언제인지, 어떻게 무고한 아이의 생명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이런 비인간적 결정을 내릴 수 있었는지. 진실을 알면 남은 인생을 좀 더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잃은 과거 찾을수 없지만 책임자 찾아내는 일 필요
시몬 호크베르다(입양 당시 4살, 현재 57살, 네덜란드)
1966년 10월6일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 이름은 김귀자, 아버지는 아프리카계 미군이었습니다. 둘은 어머니가 일하던 바에서 만났는데, 파주 인근 유엔클럽이라 는 바였을 거예요. 1969년 후반 남동생이 태어났습니다. 학교에 갈 기회도 없었고, 가족의 안전을 보장받기 힘든 형편이었습니다. 1970년 혼혈이라는 이유로 네덜란드로 입양됐습 니다. 1986년 한국사회봉사회에 편지를 보내 어머니와 동생을 찾을 수 있는지 문의했습니다. 저를 기억 하는 한 사람이 파주 옛 주소로 찾아갔지만 도시 전체가 바뀐 뒤였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분은 얼마 뒤 세상을 떠났고 조사는 중단됐습니다. 미군 캠프타운에서 저 같은 혼혈 아이들과 그 가족들에 게 일어난 일들을 알게 되면서 분노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가 이뤄진 뒤 우리 입양인과 친가족이 아직도 겪어야 하 는 모든 끔찍한 일들에 대해 누군가는 사과할 수 있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원하는 것은 엄마를 안고 우리가 잃어버린 세 월에 대해 함께 우는 것입니다. 어머니(올해 79살이라고 합니다)와 남은 시간을 보내길 원합니다. 어머니를 찾는 데 성공한 다면요. 기획공동진행 한분영(덴마크한국인진상규명그룹 공동설립자), 번역감수 김지은(April)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Adblock test (Why?)


“고아라는 것도, 양어머니 존재도 모두 거짓이었다” - 한겨레
Read More

형제복지원 피해자, 광안대교 위 고공농성···“국가폭력 신경 안 쓰는 정부, 피해자로서 비참” - 경향신문

중구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열린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피해 생존자 최승우씨(왼쪽). 김창길기자

중구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열린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피해 생존자 최승우씨(왼쪽). 김창길기자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최승우씨가 14일 부산 광안대교 위에서 피해 보상 등을 요구하며 12시간여 농성을 벌였다. 최씨는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강제동원 피해자를 대하는 태도를 보고 정부가 책임질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잃었다”고 말했다.

최씨는 이날 오전 5시22분쯤 페이스북에 “광안대교. 상판. 다리 위에 있습니다. 오늘이 마지막입니다”라는 글과 함께 광안대교 위에서 촬영한 사진을 올렸다. 신고를 접수한 부산 남부소방서는 오전 5시31분쯤 응급차 등 차량 4대와 구조대원 16명을 현장에 배치했다. 현장엔 추락 사고를 막기 위한 에어매트가 설치됐다. 최씨는 광안대교 상판과 하판 사이 난간에서 주 케이블과 상판을 연결하는 행어로프에 의지해 경찰 등과 대치했다.

최씨는 이날 아프리카 순방 중인 박형준 부산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오후 5시49분쯤까지 농성을 이어갔다. 그는 형제복지원 피해 보상과 관련한 부산시 조례 제정, 부산시장 면담 등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농성을 이어가겠다고 밝혔으나, 현장에 도착한 이성권 부산시 경제부시장과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설득으로 농성을 철회했다.

최씨는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국가가 책무를 피해, (다리 위에 올라가기로) 결심했다”며 “윤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 당사자들이나 위안부 할머니들을 제쳐두고 일본과의 미래를 먼저 이야기했다”고 했다. 그는 “그런 정부가 대한민국에 의한 국가폭력은 신경이나 쓰겠느냐”며 “국가폭력 피해자로서 비참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최씨는 손해배상 소송 과정에서 정부의 태도를 보며 큰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2021년 5월 국가를 상대로 첫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은 같은 해 11월 생존 피해자 13명에게 국가가 25억원을 배상하라며 강제조정을 결정했으나, 법무부가 이의를 신청해 조정은 결렬됐다. 당시 법무부는 피해가 확정되지 않은 사안에서 조정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해 8월 형제복지원 사건이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라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법무부는 지난달 19일 열린 1차 변론기일에서 소멸시효가 지나 손해배상 청구권이 없다는 주장을 폈다. 진실화해위의 결정이 나오고, 정권도 바뀌었으나 정부 입장은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최씨는 “국가가 멀쩡한 사람들을 가둬 폭력을 자행해놓고 책임은 없다고 주장하니 기가 찬다”면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형제복지원 내부 모습. 경향신문사 DB

형제복지원 내부 모습. 경향신문사 DB

이상훈 진실화해위 상임위원은 법무부가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납북귀환 어부 직권 재심 청구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메시지를 냈다”면서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서도 윗선의 결단이 있어야 항소 포기 등 구체적인 대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 배상에 대해서도 독립적인 특별법을 입안하는 등 방법은 많다”고 말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부산의 형제복지원에서 1975~1987년 일어난 인권유린 사건이다. 불법감금은 물론 강제노역, 구타, 암매장 등이 자행됐다. 최씨는 15살이던 1982년 형제복지원에 감금돼 구타와 성폭행을 당했다. 최씨는 형제복지원 사건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2019년과 2020년 두 차례 고공농성을 했다. 최씨의 농성으로 20대 국회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대한 논의가 재점화됐고, 2020년 5월20일 법안이 통과되면서 2기 진실화해위가 출범할 수 있게 됐다.

Adblock test (Why?)


형제복지원 피해자, 광안대교 위 고공농성···“국가폭력 신경 안 쓰는 정부, 피해자로서 비참” - 경향신문
Read More

사법농단과 잊혀진 시국사건 피해자 - 한겨레

한겨레신문 등록번호:서울,아01705 등록·발행일자:2011년 7월 19일 사업자등록번호:105-81-50594 발행인:최우성 편집인:김영희 청소년보호책임자:김영희 주소: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고객센터:1566-9...